서울 충무로에서 수십년 간 유명 음식점 대림정을 운영한 남상만(63) 사장은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서울중ㆍ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게 1973년의 일이니 벌써 38년 전 얘기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가발공장 수출업체 인왕실업이라는 회사에 들어가서 미국 LA지사에 파견돼 가발을 만들었다. 당시 한국인의 드림이라던 미국 영주권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나머지 인생은 우연하게도 "놀고 먹는 일"에 바쳐지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미국 생활 2년 정도가 지난 1979년 어머니(임용옥씨ㆍ91)로부터 그는 급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께서 평양에서 남쪽으로 와서 운영하던 대림정(1963년 개업)에 불이 난 것이다. 장남이던 그는 가업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황급히 한국으로 나와 3개월 간 복구작업을 벌였다. 미국에서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해 그곳에 정착하려던 그였지만 한국에 나와서 대림정을 살려내려다 결국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머니도 모셔야 했고 가업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대학 친구들은 "경영학과 나와서 겨우 밥집 경영하냐"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는 한때 종업원이 70여명에 달하던 이 음식점이 인사관리, 고객관리, 자금관리 등 경영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반론을 펼쳤다.
가락시장이 생기기 전에는 용산과 남대문에서 해물과 야채류를 사왔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식재료를 사다 날랐다. 밤낮없이 일하다 보니 골프는 물론 운동도 못하고 사생활은 전혀 없었다. 하도 힘이 들어 한때 그만두려고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번에는 "우리는 정년이 있지만 너는 정년도 없다. 수입도 많지 않느냐"며 만류했다. 고민 끝에 다시 시작했다. 사업이 크게 확장되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 주변 부지도 사들여 식당을 키우고 나중에는 인근 호텔도 인수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경영마인드로는 운영을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아 요즘 강남지역에서 잘나가는 젊은 마인드의 음식점인 오발탄에 경영을 위탁했다. 올해 초의 일이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해도 지금의 경영환경에서는 과거의 운영방식이 맞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음식점과 호텔. 남 사장은 "남들 놀고 먹는 것에 청춘을 바쳤다"고 했다. 자신은 놀지 못한 것을 늘 후회하고 가슴아파한다. 하지만 덕분에 그는 한국음식업중앙회 회장이 됐고 뒤이어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회장 직도 맡았다. 그런 타이틀이 별 의미는 없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의 '놀고 먹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을 진 것이다.
남 사장은 "우리끼리 놀고 먹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관광수지 적자가 연간 70억달러나 된다고 그는 말했다. 다음달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몇 년 뒤면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다. 또 우리 주변 2~3시간 비행거리에 무려 20억명의 인구가 살아간다. 일본과 중국 얘기다.
그는 "해답은 부가가치가 높은 관광산업에 있다. 돈을 많이 쓰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관광, 교육관광, 크루즈여행 등 '돈이 되는' 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각종 규제, 관계부처의 제동, 불협화음 등으로 진행이 안되고 있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여건과 능력이 있는데도 두뇌플레이를 못하는 것이 우리의 심각한 문제"라는 것의 그의 일침이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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