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집' 위안부 할머니 "이제 8명만 남았어"
“왜? 죽을 때 다됐다고 찍으러 왔어? 우리만 맨날 취재하면 뭐해. 대통령은 일본에 과거사 문제는 아무 말도 못하는데. 그런 정부부터 비판하고 기사를 써야지.”에두르지 않은 정확한 지적에 가슴이 먹먹하다. 경기 광주에 자리한 나눔의 집, 이곳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여덟 분이 생활하고 있다. 8.15 광복을 맞이한 지 66년이 다되어 가지만 이들의 역사시계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청춘의 꽃을 무참히 짓밟힌 그 날에 멈춰 서 있다. 명예회복을 위해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가 벌써 980회. 하지만 아직도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91년부터 실태조사로 밝혀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4명 중 현재는 170명만이 생존해 있다. 가해자는 세월이 흘러 모든 범죄가 잊혀지길 바라겠지만,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재는 끝까지 진실을 증언하고 공식 사죄를 요구할 것이다. 함께 사시는 김군자 할머니와 배춘희 할머니는 사진 취재에 끝내 함께 하지 않았다.
사진 좌부터
이옥선 - 1927년 부산 출생. 1942년 16세 때 중국 연길로 끌려가 3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함. 해방 후 중국에서 지내다 2000년 영구 귀국.
이용녀 - 1926년 경기 여주 출생. 1942년 17세 때 대만 싱가포르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함. 해방 후 미얀마 양곤 수용소를 거쳐, 1946년 귀국.
김순옥 - 1922년 평양 출생. 중국 헤이룽장성의 위안소에서 약 5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함. 해방 후 중국에서 지내다 2005년 12월 귀국.
박옥선 - 1924년 경남 밀양 출생. 1941년 18세 때 중국 헤이룽장성 위안소에서 4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함. 부대가 폭격을 맞은 후 산 속을 헤매다가 해방을 맞음. 중국 헤이룽장성에 살다 2001년 영구 귀국.
강일출 - 1928년 경북 상주 출생. 1943년 16세 때 끌려가 중국 심양 장춘 목단강 위안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함. 전쟁이 끝나갈 무렵 장티푸스를 심하게 앓아 부대 밖으로 이송되어 불에 태워지려다 조선 독립군들의 도움으로 구출. 중국 길림에 살다 2000년 영구 귀국.
김화선 - 1926년 평양 출생. 16세에 싱가포르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함. 그 후 중국 목단강 등에 연행당해 피해를 입음. 1947년 귀국
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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