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이 무너지던 27일 아침,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도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았다. 우면산의 산사태로 엄청난 토사가 산자락에 있던 국악원을 덮친 것이다. 거대한 흙물은 국악원의 국악박물관 출입구를 뚫고 전시실까지 쏟아져 들어왔고, 지하주차장과 전기실까지 토사로 메워버렸다.
출근시간 전이라 직원도 별로 없는 상황이었다. 몇 안 되는 당직자들이 서둘러 건물 출입구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토사 유입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전 8시20분께 구청과 소방서에 도움을 요청해 봐도 전화는 아예 연결이 되지 않았다. 직원들만의 힘으로 어떻게든 토사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오전 10시 20분께 겨우 소방서와 전화가 연결됐지만 "다른 곳 상황이 긴박하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직원들은 서둘러 중앙광장에 쌓인 토사더미에 배수로를 파 물길을 돌리고, 지하로 파고든 흙더미를 걷어 내기 시작했다.
귀중한 자료를 보관하는 국악박물관이 직접적으로 산사태를 당했지만 다행히도 유물 피해는 입지 않았다. 천우신조(天佑神助)다. 박물관의 전시실 확충공사를 위해 불과 열흘 전 전시 유물들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악원 우면당의 수장고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국악박물관의 3층 수장고에 보물급을 포함한 5,000여 점의 유물이 남아 있었지만 다행히 그곳까지 물과 토사가 차오르진 않았다.
국악원 이교택 기획관리과장은 "유물을 옮겨 놓지 않았더라면 전시 유물 상당수를 고스란히 잃었을 것"이라며 "유물 피해가 없었던 건 하늘의 도움"이라고 했다. 미리 옮겨 놓은 유물은 국악기 중 가장 큰 북인 건고를 비롯해 궁중에서 쓰였던 악기들과 국악계 명인들이 기증한 국악 자료들로 국악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유물들이다.
국악원은 28일부터 군장병과 소방서, 구청 등의 지원을 받아 토사를 걷어 내며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국악원 측은 냉방장치가 완전히 복구되는 8월 6일부터 공연을 다시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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