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폐족(廢族)이라고 책망했던 문재인이 뜨고 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노무현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집권기간 내내 무능하다고 처절하게 비판 받았던 노무현이 신화처럼 부활하고 있다. 지리멸렬했던 민주당에 정치지망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보수의 시대가 다시 열린 지 불과 3년 반만에 이렇게 바뀌다니.
2009년 말 대표적 보수논객인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한 일간지에 '진보시대여, 안녕'이라는 칼럼을 썼다. 당시 많은 이들이 이 칼럼을 교과서처럼 되뇌며 진보시대의 조종(弔鐘)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들은 언제 다시 돌아올까, 아니,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질문은 절박하지만, 답은 모호하다. 진보의 설득력은 바래고, 사회적 자원은 날로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면하는 시민의식을 일깨웠던 빛나는 변론들은 왜 독설처럼 들리며, 그들의 논리와 언어는 시민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가." "세계의 보편적 추세에 힘입어 보수의 시대가 승승장구할 새로운 십 년대를 며칠 앞둔 오늘, 진지하고 비장하게 작별을 고한다. 진보시대여, 안녕!"
보수시대 3년만의 폐족 부활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성장, 선진, 법치, 질서라는 보수의 언어들은 여전히 필요한 가치임에도 현격하게 힘을 잃고 있다. 그 자리에 당분간 고개를 들지 못할 것으로 보였던 복지, 분배, 정의, 평화라는 말들이 들어서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보수의 대명사인 한나라당조차 복지와 분배를 먼저 외치고 있으니, 진보시대가 아니라 보수시대가 안녕을 고하는 분위기다.
왜 이렇게 됐을까. 보수시대를 압도적인 지지로 열어주었던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대를 거두고 있는 것일까. '조상이 큰 죄를 지어 그 자손들이 벼슬을 할 수 없다'는 폐족의 장형(長兄) 격인 문재인이 바람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보수 정권의 잘못 때문이다. 보수세력은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너무 크게 이겼다. 그리고 오만해졌다. '내가 한다는데 누가 감히'라는 식의 밀어붙이기, 코드가 맞지 않으면 대화조차 하지 않는 독선은 스스로의 토대를 허물었다. 나는 이 대통령 취임 이틀 전인 2008년 2월 23일 본보에 '배제의 정치는 실패한다'는 칼럼을 썼다. 그리고 한 달쯤 후 다시 '오만의 추억'을 썼다. 둘 다 정권의 오만과 편가르기가 초래할 어두운 결말을 경고하는 내용이었지만, 정권 초 권력자들에게는 소 귀에 경읽기였다.
오만과 배제보다 더 큰 문제는 성장 신화의 붕괴였다. 수출은 늘고 재벌들은 태산처럼 커가는데 보통사람들은 더욱 힘들어졌다. 부자 감세를 해주면 소비가 늘어나 덩달아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라는 논리는 절박한 청년실업 앞에서 허공으로 흩어졌다. 정의는 대기업들이 골목까지 들어와 폭식을 하는 현장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들만 따르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허망해지면서 사람들은 거짓에 미혹됐다는 부끄러움과 비겁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 통증 속에서 문재인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그는 대통령의 친구로 민정수석, 비서실장일 때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다. 참여정부의 과오를 인정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진보가 갖는 치명적 약점인 선민의식을 내세우지 않았고 스스로를 이념에 옭아매지 않았다. 퇴임 후 노무현을 떠나지 않았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절제와 의연함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문재인에게서 진정성, 의리, 합리주의를 본 것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가 갈망하지만 좀처럼 찾기 힘든 덕목이었다.
문재인, 이제 심각하게 고민을
지금 문재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행보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무위의 정치, 모호한 이미지의 정치가 유효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문재인은 고민해야 한다. 시대흐름이 바뀌어야 하는지, 그 맨 앞에 설 의지와 자신이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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