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이 더 이상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해체돼야 마땅합니다."
손봉호(73) 고신대 석좌교수는 한국 개신교계의 대표적 교회연합기관인 한기총이 대표회장 금권선거 논란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기독교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26일 '한기총 해체 촉구를 위한 목회자ㆍ평신도 전문인 100인 선언식' 직후 만난 자리에서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서 금품이 오갔다는 폭로가 나온 것은 올 2월. 손 교수가 불을 지핀 한기총 해체 운동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교계시민단체와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하지만 한기총은 요지부동이다. 지난 7일 특별총회에서는 금권선거의 장본인인 길자연 목사 대표회장 인준안을 267표 중 200표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켜 다시 한 번 실망을 안겼다. 하지만 대표회장 당선 무효 소송이 종결될 때까지는 김용호 변호사가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대행을 수행하게 돼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손 교수에게 한기총 해체라는 극약 처방이 왜 필요한지 물어보았다.
-한기총이 길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인준했는데.
"한국 기독교가 이처럼 타락한 적은 없었다. 지금 한기총의 행태는 너도 죄인, 나도 죄인이니 우리 서로 용서하자는 식이다. 도둑이 도둑질하다가 다른 도둑에게 들키자 당신도, 나도 도둑이니 서로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종교단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엄격한 율법적 잣대를 들이대자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양심의 문제다. 길 목사 인준은 한국교회의 수준이 얼마나 낮고, 얼마나 비성경적인지 보여준 사건이다. 금권선거는 용서와 타협이 가능한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범죄행위다."
-한기총이 개혁 요구에 귀를 막고 있는데 향후 계획은.
"그 동안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기총이 스스로 바뀌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기총은 없어져야 한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다. 해체한 뒤 이를 대체할 기관을 세우자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도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기관은 없다. 한기총 해체를 위해서는 누구와도 손 잡을 의사가 있다. 한기총은 결국 해체될 것이다. 개신교는 많은 것을 잃어봐야 한다. 핍박을 받고 무시도 당해봐야 한다. 그래야 예전의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다. 특권을 누리면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기독교계의 의견을 수렴할 기관이 필요하다는데, 모든 교회가 굳이 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을까 싶다. 대표 단체를 만드는 것은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 일뿐이다."
-기독교계가 금권선거 등 유독 돈에 얽힌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기독교인은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사회에 만연한 배금주의적 문화를 개신교가 앞장서 비판해야 하는데,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한국교회는 돈 잘 벌고 출세한 사람을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니 부정적인 방법으로 치부해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돈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당연하게 생각한다. 사회에서도 지탄 받는 일을 교회 대표라는 이들이 거리낌없이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다."
-개신교 타락에 교인들의 책임은 없나.
"교인들이 목사를 견제해야 한다. 무조건 잘한다고 칭찬만 하면 목사를 타락으로 인도한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요한 칼빈)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다. 이권이 개입된 곳에는 반드시 감시가 필요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인들은 뒤에서 쑥덕공론만 할 뿐 행동에 나서려고는 하지 않는다. 목사의 부정을 눈감아 주는 것은 죄악이며, 교회를 망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단죄(斷罪)를 금기시해 교회 안의 비리를 눈감아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원수를 용서할 의무가 있지만 내 이웃의 원수까지 용서할 권리는 없다. 오히려 분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총이 있었다면 강도가 덮치기 전에 가서 도와주었을 것이다. 죄악은 사전에 막는 게 최선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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