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탄 사나이'우사인 볼트(25ㆍ자메이카) 등 지구촌 건각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웅을 겨루는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역대 최대 규모로, 207개국에서 2,5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47개의 금메달을 놓고 9일간 열전을 벌이는 이번 대회는 단일 종목 임에도 월드컵, 올림픽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구촌 빅 이벤트다.
육상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미국도 개최해 보지 못한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치른다는 것만으로도 프라이드를 가질 만 하다. 그러나 정작 잔치의 주인공인 한국 육상계의 입장은 곤혹스럽다.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붐 조성은커녕 대회가 열리는 것 조차 모르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은 단일 종목 대회여서 그런지 지금까지 우리가 개최한 올림픽이나 월드컵, 아시안게임과는 달리 지엽적 행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계 수준과 격차가 큰 한국 육상은 메달은 언감생인인 채 비교적 수준 차가 적은 10개 종목에서 톱 10에 진입한다는 '10-10 프로젝트' 달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참 소박한 목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개막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실패작'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는 데 있다. 아직 인프라 공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손님 맞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팔리고 있다는 입장권의 행방이 묘연해 과연 관중석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지 우려된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후 만난 유치위 관계자는 "이번 대회가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한 달 뒤에 열리기에 망정이지 거꾸로였다면 큰 일 날뻔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은 우리가 들러리를 서는데 그칠 것"이라며 "국내에서 치른 국제대회 중 유일한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자칫 천덕꾸러기가 될 지도 모르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이번 대회를 통해 변방에 머물고 있는 한국 육상 도약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장기적 안목에서 이번 대회를 꿈나무를 발굴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한국 육상도 골프의 '박세리 키드'처럼'육상 키드'를 키울 기회가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몬주익의 영웅'황영조가 좋은 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세우지 못했고, 2007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을 유치한 뒤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세계기록에 10억원의 당근을 내걸었지만 지난 해 31년 묵은 남자 100m 기록만 먼지를 털고 새 옷을 갈아 입었을 뿐이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동경하는 우상은 역경을 헤쳐 나가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한 유소연이 그랬다. 유소연은 98년 US오픈에서 박세리가 보여준 '맨발의 투혼'을 보고 골프에 입문한 대표적인'박세리 키드'다. 우상이 보는 앞에서 우상을 닮고 싶은 열망이 역전 우승을 이끌어 냈을 것이다.
대구에서 우사인 볼트 등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벌이는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초등학교 육상 선수들에게 모두 현장에서 관람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꿈나무들에게는 인생 최고의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가 차린 잔치에서 들러리로 전락할 수도 있겠지만 10년 뒤 한국 육상을 짊어질 '대구 육상 키드'를 발굴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의 수확은 없을 것이다. 이제 육상에서도 박태환, 김연아가 나올 때가 됐다.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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