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쉽지 않을 액션이다. 여배우들을 위한 전용 수식어인 '가녀린'이란 말을 붙일 엄두조차 안 난다. 오토바이를 타고 석유시추선 갑판 위를 질주하고, 높은 곳에서 몸을 던져 외줄에 위태롭게 매달린다. 코끼리만한 괴생물체에 맞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7광구'(8월 4일 개봉)의 해준(하지원)은 '에이리언' 시리즈의 리플리(시고니 위버) 중위를 연상시킨다. 할리우드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의 액션 연기도 떠올릴 만하다.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한 호텔에서 하지원을 만났다. 군살 없이 탄탄한 몸이 당당했다. "곧 태릉선수촌 들어가겠다"고 농담을 던지자 그는 "그렇잖아도 '코리아'를 찍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코리아'는 탁구 남북단일팀 실화를 다룬 영화로 하지원은 옛 탁구스타 현정화를 연기한다.
'7광구'는 고립무원의 바다 위 석유시추선을 배경으로 정체불명의 괴물과 인간의 싸움을 그린다. 제작비 100억원의 이 3D 대작에서 하지원이 맡은 해준은 오로지 석유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석유에 밥 말아먹을"(영화 속 대사) 남자 같은 여자다. 조선 여형사의 화려한 검술(드라마 '다모'와 영화 '형사')과 여자 권투선수의 눈물 젖은 투혼('일번가의 기적'), 스턴트우먼의 사랑(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이은 액션 연기를 수행했다. 그의 몸을 아끼지 않은 연기는 '7광구'의 느슨한 이야기 전개와 개연성 부족을 메운다. 하지원은 "딱히 액션을 염두에 두고 고른 영화가 아닌데 또 몸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가 가진 힘과 감동이 있으니 힘들어도 또 하게 된다"고도 했다.
안성기 박철민 오지호 이한위 송새벽 등 지명도 있는 배우들 속에서 그는 사실상의 주연이다. 그는 "영화를 내가 이끌어 가야 한다는 부담보다 힘 있는 캐릭터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괴물과 싸울 만한 존재로 보이기 위해, 작업복을 입어도 표시 나도록 근육도 만들고 고기도 자주 먹으려 했어요. 저에 비하면 거인인 오지호는 (제가 왜소해 보이지 않게) 일부러 근육을 줄였어요."
영화를 위해 하지원은 스킨스쿠버와 오토바이 운전을 배웠다. 스킨스쿠버는 애초 역할과는 무관했으나 "바다와 친숙해지고 싶어 시작했고, 곧 빠져들어 시간만 나면 하는" 취미가 됐다. 오토바이도 무술팀의 지도를 기다리지 않고 학원을 찾아가 따로 배웠다.
"하루 3,4시간 강의도 듣고 비 오면 우비 입고 오토바이 타는 연습을 했어요. '아싸~ 영화 속 설정과 비슷하다'며 빗길에서도 타봤습니다. 한 없이 두렵지만 재미있다 생각하자며 배운 거죠. 배운지 일주일 만에 면허를 땄어요. 시내 주행도 했고, 골프장도 오토바이를 타고 갔습니다. 촬영 중엔 오토바이를 타다 미끄러지고, 오토바이에 깔리기도 했어요."
'7광구' 촬영 중에 화제의 드라마 '시크릿 가든' 출연 결정을 했다.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은 '7광구'에 출연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는 "내가 해준을 연기한 것인지, 길라임이 해준 역할을 한 것인지 살짝 헛갈리기도 한다"며 웃었다. '7광구'를 찍으며 자신이 스턴트우먼인지 주연배우인지도 혼동이 됐겠다고 묻자 그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저는 예쁘고 보호 받는 여자보다 멋있는 여자가 더 좋아요. 졸리도 당연히 좋아하고요. '7광구'도 총을 든 멋있는 여전사 역할을 해보고 싶어 선택한 영화예요. 제가 생각했을 때 전생에 무사였던 게 분명해요. (허리에)칼 차고 숲 속을 달리는 장면을 촬영할 땐 정말 기분이 좋아요. 하늘을 나는 꿈을 많이 꾸는데 전생에 독수리이기도 했나 봐요. 다음엔 낮엔 사람, 밤엔 독수리인 역할도 하고 싶어요." 그는 천상 충무로의 여전사가 될 팔자인가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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