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미어리그 스폰서 따내라" 총성 없는 전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고명문구단이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구단으로 평가 받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소속의 박지성은 AON이란 글자가 새겨진 붉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 지난해부터 맨유를 공식후원하고 있는 미국국적의 세계 최대 보험중개사인 에이온(AON)의 로고다.
그런가하면 EPL에서 맨유와 항상 우승을 다투는 신흥명문구단 첼시의 파란색 유니폼에는 삼성(SAMSUNG)의 흰색 로고가 선명하다. 맨유의 최대 라이벌인 명문 리버풀은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 스폰서다.
전통의 명문구단 아스날과 신흥명문으로 부상하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맨시티)가 맞대결할 때면 항공전쟁이 벌어진다. 아스날을 후원하는 아랍에미리트항공과 맨시티 스폰서인 에티하드항공의 자존심 대결이다.
이처럼 EPL에는 국적에 관계없이 전 세계 기업들이 몰려든다. ELP 자체가 영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모든 종목을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프로리그인 만큼, 211개국 40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그야말로 슈퍼리그인 만큼,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후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들어가는 돈도 천문학적이다. 영국계 은행 바클레이스는 2006년부터 3년간 EPL 명칭 앞에 회사명을 붙이기 위해 무려 6,580만파운드(약 1,222억원)를 지불했고, 지금도 EPL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다. 에이온은 맨유의 유니폼에 경쟁보험사인 AIG를 제치고 자사의 로고를 넣기 위해 4년간 총 1억3,000만달러(약 1,480억원)를 내놓았다.
에미리트항공은 EPL의 아스날 뿐 아니라, 이탈리아 세리에A의 명문구단인 AC밀란,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SV도 후원하고 있다. 이 항공사는 200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성공했는데, 명문구단 후원을 통한 인지도 제고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자체 판단하고 있다.
삼성 역시 2005년부터 전 세계에서 900만명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첼시의 메인스폰서를 맡은 뒤 유럽시장에서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후원계약을 맺은 뒤 리버풀이 올해 아시아투어에 나선 것, 심지어 프랑스 모나코구단 소속의 박주영을 영입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모두 스탠다드차타드의 아시아 마케팅강화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축구 열기라면 남미 또한 유럽 못지 않다. 최근 폐막된 남미 최대 축구대회인 '코파(Copa) 아메리카 2011'에는 우리나라의 LG전자와 기아차가 스폰서로 참여했다. 177여개 국가로 중계돼 60억명이 시청한 이번 대회를 통해 양사는 브랜드 로고 노출과 현지 마케팅 프로그램 등으로 각각 2억달러, 3억달러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화도 최근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각광 받고 있는 손흥민의 소속팀인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와 2013년까지 총 80만 유로의 서브 후원 계약을 맺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스포츠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콘텐츠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다른 광고분야보다 훨씬 효과가 크다"면서 "세계 최고의 축구시장인 EPL과 남미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상상을 초월한 거액을 베팅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 후원 선수 스캔들 터지면 이미지 동반 추락
스포츠 마케팅의 성패는 선수 그 자체에 달려 있다. 선수가 예상 밖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 효과가 배가되지만 뜻하지 않은 스캔들이 터지면서 곤욕을 치른 업체들도 많다.
대표적 사례는 타이거 우즈. 1996년 나이키는 우즈를 후원하면서 골프마케팅에 뛰어들었다. 나이키골프의 옷과 모자, 골프공과 클럽을 사용하면서 나이키골프는 폭발적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우즈효과'였다.
하지만 2009년 11월 수많은 여성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성추문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골프황제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를 후원했던 수많은 기업들은 이미지가 동반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후원을 중단했다. 2003년 공식 광고모델로 우즈를 선정하고 광고비의 83%를 우즈 광고에만 썼던 세계적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는 스캔들이 불거지자마자 미국 전역에 설치된 광고판과 포스터를 철거하며 '우즈 이미지 지우기'에 나섰다. 우즈의 최대 스폰서 중 하나였던 게토레이도 그를 상징하는 음료인 '게토레이 타이거 포커스'를 없애버렸다. 오직 나이키만 아직까지 우즈를 후원하고 있다.
국제적 망신을 사며 스포츠 마케팅 업계에 좌절을 안겨 준 또 하나의 선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ELP)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축구선수인 라이언 긱스다. '맨유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던 긱스는 모델과 외도가 발각된 데 이어 친동생 아내와의 불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전세계 축구 팬들을 경악케 했다. 영국 언론들은 "긱스의 최대 스폰서기업인 리복과 프랑스 자동차업체 시트로앵 등이 후원 계약을 철회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나마 우즈와 긱스는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는 해당 기업에 후원 이상의 효과를 가져다 주었지만, 기업이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도 전혀 득을 보지 못한 경우도 있다. '여자 우즈'로까지 불렸던 미국 여자 골퍼 미셸 위가 대표적인 예. 2005년 프로무대에 데뷔하면서 나이키, 소니와 파격적 후원 계약을 맺어 '1,000만달러 소녀'로 불렸던 미셸 위는 수년 동안 부진만을 반복하며 후원기업을 애타게 만들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 또 하나의 전장 '그린'
미 여자프로골프(LPGA) 최고 권위의 대회인 US 여자오픈에선 또 한 명의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폐막된 이 대회에서 LPGA 투어 멤버가 아닌 국내 투어 출신의 유소연이 깜짝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유소연의 우승소식에 가장 크게 웃은 곳은 한화그룹이었다. 한화는 올 초 골프단을 창단하면서 유소연을 스카우트했는데, 첫 해 US여자오픈 우승의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유소연의 옷과 모자에 새겨진 한화 로고는 전 세계에 생중계됐고, 우승 인터뷰에선 "스폰서인 한화그룹 김승연회장께 가장 먼저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화 관계자는 "유소연의 우승이 약 2,500억원 정도의 광고효과를 가져다 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요즘 대기업들의 스포츠마케팅이 가장 집중되는 종목은 골프다. 무엇보다 구매력 있는 중산층 이상의 운동이란 점, 룰과 매너가 중시되는 '신사'운동이란 점, 경기시간이 길어 후원기업의 브랜드 노출이 많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그러다 보니 세계 유명기업치고 골프대회를 후원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 BMW, 혼다, 닛산, 볼보 등 세계적 고급자동차 메이커들은 한결같이 자기 이름을 내건 프로골프대회를 갖고 있다.
현대차가 올해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개막전을 공식 후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로 명명된 이 대회를 통해 현대차는 대형 세단 에쿠스의 미국 상륙을 알렸고, 덕분에 미국 대형차 시장에서 에쿠스는 시장점유율 5%에 달하고 있다. 기아차 역시 LPGA투어에서 '기아클래식'을 개최하고 있는데, K5모델을 미국 무대에 알리는 기회로 활용했다.
지난 14~17일 영국 로열 세인트 조지스 골프장에서 열린 제 151회 디 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오픈)에선 한 기업이 각별히 주목을 받았다. TV중계 중간중간에 삽입된 이 기업의 광고는, 선수가 잘못 친 공이 거대한 중장비를 맞고 홀인원이 되는 유머러스한 내용이었다.
이 중장비에 새겨진 로고는 두산. 두산은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디 오픈의 메인스폰서였다. 두산은 영국내 자회사인 두산파워시스템(DPS)를 통해 수년간 고객들을 디 오픈 갤러리로 초청해 왔는데, 작년부터는 롤렉스, 메르세데스-벤츠, HSBS, 니콘 등과 함께 당당하게 이 대회 메인 스폰서로 활약해 오고 있다.
소비재기업이 아닌데도 후원사를 맡은 이유는 인지도 제고효과 때문. 두산 관계자는 "워낙 권위 있는 대회여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향상된 것으로 본다"며 "내년에도 후원사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골프는 제품과 기업 이미지를 동시에 제고할 수 있는 대표적 스포츠 마케팅 종목"이라며 "최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우리 기업의 참여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