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에 찬 정신이상자의 돌발 행동인가,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확신범의 집단 살인인가.
노르웨이 연쇄 테러 용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의 정신상태를 두고 논란이 불붙고 있다. 브레이빅의 과거 행적과 발언이 속속 드러날수록 정신병자가 아니고서는 76명의 무고한 인명을 거리낌없이 살상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브레이빅의 변호인인 가이르 리페스타드는 2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브레이빅을 면담한 결과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고 단정했다. 스스로를 구세주라고 믿고, 지금은 전쟁 중이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등 상식으로 그의 행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환자'라는 것이 변호인의 판단이다.
반면 미 CNN방송은 이날 "브레이빅은 대단히 신중하고 목적의식이 분명한 살인자"라며 정상인 쪽에 무게를 뒀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범죄학자 브라이언 레빈은 "브레이빅에게 반사회적 인격장애(소시오패스) 증상이 나타나기는 해도 이 때문에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범죄를 준비해 온 브레이빅의 신중함은 정신이상자들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미 노스이스턴대의 범죄학자 제임스 앨런 폭스도 "대량 살상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에게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며 "이들은 적어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브레이빅은 오히려 1995년 미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범 티머시 맥베이, 1978~86년 연쇄 우편물 폭탄테러로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 수학자 테드 카진스키 하버드대 교수 등 집단 살인자의 행동 패턴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극우단체와 접촉하는 등 "테러에 공을 들였다"는 브레이빅의 주장은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브레이빅이 범행 90분 전 1,500쪽짜리 선언문을 250명의 영국인들에게 이메일로 뿌렸다"고 보도했다. 전날에는 브레이빅이 지난해 3월 극우단체 영국수호동맹(EDL) 지도자들과 만난 사실도 확인됐다. 또 브레이빅의 계모인 토브 외베르모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폭력적이거나 반이슬람적인 행동을 전혀 표출하지 않았다"고 밝힌 만큼 대면관계에서는 상당한 절제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브레이빅의 범죄 특성상 최종 정신감정 결과가 공개될 경우 논란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한편 노르웨이 사법당국은 브레이빅에게 대테러법이 아닌, 최고 30년형 선고가 가능한 반인륜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범죄 법정 최고형은 21년이어서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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