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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여행의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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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여행의 참맛

입력
2011.07.2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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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여름 휴가를 떠나 본 기억이 없다. 여름 휴가 말고도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을 해본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가 여름에 휴가를 안갔다거나 여행을 다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네 친목계나 향우회 같은 모임에서 이따금 여행을 가셔서 중고등학생 시절 3남매만 집을 봤던 기억이 있다. 이따금 한번씩 남동생을 데리고 가셨다는데 내가 안갔으니 그 기억도 당연히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당시에 우리를 데려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고,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쓴 기억도 없다. 부모가 안계신 집에서 우리 나름대로의 자유와 해방감을 즐겼었던 것 같다.

우리 집만 그랬던 건지 다른 집들도 다 그랬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30년 전이면 지금보다 훨씬 더 먹고 살기 힘들고 사는 게 팍팍했을 시절이니 아이들이 방학을 해도 지금처럼 휴가다 여행이다 챙겨서 다닌 집은 드물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부모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시절, 지금의 내 나이였을 그 시절에 우리 3남매를 두고 한번씩 여행을 다니신 건 정말로 잘하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칠순을 훌쩍 넘기신 부모는 지금은 예전처럼 여행을 다니지 못하신다. 기력이 많이 떨어지신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같이 여행을 다니시던 친구들이 지금은 가까이에 없기 때문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보행이 불편해진 친구, 손주들 돌보느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친구들 때문에 여행의 동반자가 하나씩 둘씩 사라지면서 부모의 여행은 아주 뜸해지셨다.

지난 주말에 1박2일 안면도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결혼을 해서 각자 가정을 꾸려 시간을 맞추기 좀처럼 어려운 우리 삼남매와 부모가 함께 하는 짧은 여행이다. 온 가족 나들이는 이번이 달랑 두 번째다. 그런데 군대에 간 조카를 빼고 가족들이 다같이 하는 여행에 아버지께서 오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안오신다는 것을 나는 휴게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아버지가 안오신 이유는 집을 지켜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유 때문이었다. 집이 도망을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장기간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달랑 이틀 집을 비우는 것 뿐인데, 문단속만 잘 하면 되는데 집을 본다고 안오시다니. 아쉬워하는 우리들에게 엄마는 친구분 항암치료가 끝나는 대로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휴가를 가시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라 하신다. 그렇게 가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도 하신다.

연로하신 부모는 자식들과의 여행, 친구들과의 여행 중 어떤 쪽이 더 좋을까 곰곰 생각해 본다. 세월이 흘러 내가 우리 부모 나이가 되어도, 나는 지금 그렇듯 가족과도, 친구들과도 여행을 다니고 싶을 것 같다. 부모 마음도 나와 같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둘 다 좋다'로 결론을 내린다.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아들손주며느리, 딸과 사위들 함께 여행도 다니고, 집 지킬 걱정 없이 친구들과도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집은 누가 지키냐고? 또 소는 누가 키우냐고? 걱정일랑 잠시 접어두고 열심히 일한 고단한 우리도 여행을 떠나자. 가족과 함께. 부모와 함께. 그리고 아주 이따금 한번씩은 일상도 가족도 내려놓고서.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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