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위험한 선택이었다. '집' 문제에 유독 민감한 우리나라 정서에 집 없는 서민가정을 모아놓고 서바이벌을 통해 '단 한 가구'만을 뽑아 집을 선사한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설마 했다. 집 장만에 평생을 바치는, 아니 평생을 뼈빠지게 일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가 힘겨운 우리 현실에서 제작진이 '집'을 가지고 무리수를 던지리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서민들의 집을 고쳐주는 훈훈한 방송으로 인기를 끌었던 '러브 하우스'를 성공시킨 '일밤' 아닌가.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로 결론 났다. 방송 3주 만에 '일밤' 게시판은 "전파낭비다" "폐지하라"는 비판 일색으로 도배됐다.
집을 내건 서바이벌 프로그램 MBC '우리들의 일밤-내 집 장만 토너먼트:집드림'. 제목 그대로 '집을 드리는' 프로그램이다. 가족이 화합해 답을 맞히는 퀴즈쇼로 최종 우승한 가족에게 수도권에 있는 3층 규모의 아담한(25평) 단독 주택이 주어진다. 주말 황금시간대인 일요일 오후 5시, 그것도 화제를 모으는 '나는 가수다'의 바로 앞에 편성돼 후광효과도 있다. 그런데 시청률은 6.5%(10일 첫방송)→4.4%(17일)→3.6%(24일), 계속 추락 중이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집 없는 사람을 이용해 오락거리를 만들고 있다" "희망고문을 거둬라" "발상이 잔인하다" 등 비판 목소리는 더 험악하다. 2,400여 신청가구 중 심사를 거쳐 정말 집이 필요한 다문화 가정, 탈북자 가족, 택시기사 4남매 등 총 열 여섯 가족이 선정됐다. 이들이 가정사를 밝히고 얼굴 팔리는 걸 각오하고 방송에 출연한 건 집을 얻고 싶다는 일념 하나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내는 퀴즈라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네덜란드의 건축가가 가족을 위해 지은 으리으리한 저택 '소데 하우스'를 방문해 거기 걸린 그림이 두 아들 중 누구의 것인가, 딸 아바의 새로운 취미는 보트타기인가 텃밭가꾸기인가를 묻는 황당무계한 퀴즈는 패널로 참석한 연예인들도 비웃을 정도다. 가족들은 긴장되겠지만 보는 이들은 허탈하고 안타깝다.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재조명하겠다"는 제작의도는 안드로메다로 보낸 지 오래다.
이쯤 되면 무주택 가족을 위한 야심 찬 프로젝트가 무주택자들을 농락하는 폭력이 되어버린 셈이다. 숱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그래도 참가자들이 목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실력을 높이거나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이 프로그램은 우승할 단 한 팀을 제외하면 뭐 하나 건질 게 없다.
시청자들 또한 탈락하는 가족을 지켜보는 게 불편하다. '혹시나' 하는 꿈을 꿨던 이들이 황당한 퀴즈를 맞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탈락하고 실망하는 모습을 왜 방송으로 중계해줘야 하나. 제작진이 우연성에 기댄 퀴즈에 집을 건 '통큰 복불복' 한판을 보여주려는 게 진짜 의도가 아니었나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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