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LG디스플레이를 겨냥한 일본과 대만업체들의 협공이 거세지고 있다. 세계 반도체ㆍLCD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 국내 업체를 압박하기 위해, 일본과 대만회사들은 서로 경쟁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타도 한국'이란 공동목표를 위해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고 있다.
LCD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 샤프와 대만 치메이 이노룩스(CMI)는 대형 LCD 부문에서 합작법인 설립에 최종 합의했다. 이 합작법인에 샤프와 CMI는 유리기판 및 컬러 필터를 공동조달하고 샤프는 CMI에 고투과율 액정기술을, CMI는 샤프에 20~40인치 TV 패널을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는 "샤프와 CMI가 한국의 거인들(Korean Giants)에 맞서 동맹을 맺은 것이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거인들이란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를 지칭한다. 1분기 세계 LCD시장에서 LG디스플레이는 26%, 삼성전자는 25.6% 점유율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으며 두 회사의 생산량은 전 세계 물량의 절반이 넘는다. CMI는 세계 4위(15.6% 점유율), 샤프는 5위(7.9%)여서 두 회사가 뭉칠 경우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달 말에는 일본 도시바와 소니, 히타치 등 3개사가 스마트폰 등 중소형 디스플레이 부분에서 통합 법인을 세웠다. 이 역시 각 사가 독자적으로 한국 업체에 대항하기엔 역부족이란 판단 때문.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샤프와 CMI가 홀로는 어렵다고 판단해 합작을 추진한 것 아니겠느냐"며 "당분간 (국내 업체를 겨냥한) 경쟁 업체들 사이의 합종연황은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반도체시장의 '타도 한국'기류도 뚜렷하다. 일본 도시바와 미국 샌디스크는 최근 낸드플래시 생산 합작사 설립에 합의했는데, 샌디스크가 낸드플래시 생산시설에 생산 장비 공급 및 지원을 맡고, 도시바는 공장 운영을 책임지는 형태다.
앞서 올해 초에는 세계 3위의 일본 반도체 업체인 엘피다가 세계 6위인 대만 파워칩의 D램 부분 인수를 결정하고 세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올 1분기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에서 엘피다는 13.6%, 파워칩은 2.5%였던 점을 감안하면 두 회사가 합쳐질 경우 세계 2위인 하이닉스반도체(23.2%)를 추격권내에 둘 수 있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엘피다의 파워칩 D램 부분 인수는 최근 D램 가격 하락에 따른 실적악화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합종연횡 기류에 대해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하이닉스 등은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LCD의 경우엔 발광다이오드(OLED)를 포함한 차세대 패널 제조기술에서 월등히 앞서 있고, 반도체 역시 제작에 필수적인 미세공정 기술 측면에서 해외 업체들과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당장의 큰 위협은 아니라는 게 내부 판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는 업체끼리 통합한다고 해서 LCD나 반도체 업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이나 대만회사들로선 사활이 걸린 상황인 만큼, 배수의 진을 친 공세는 계속될 것이고 이 경우 어떤 예측불허의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가근 하나대투증권 연구위원은 "일본과 대만 업체들이 전략적 제휴를 통해 중복 투자를 줄이면서 확보된 유동성 자금을 R&D에 투자하면 의외의 시장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일본ㆍ대만의 협공에 오히려 대규모 투자로 '맞불'을 놓아 추격의지에 쐐기를 박는다는 방침.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 "(시장상황이 좋지 않지만)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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