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업체 사이에 이른바 '박카스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주부터 대형마트에 처음 등장한 박카스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업체들마다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박카스 등 48개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해 약국 이외의 곳에서 팔수 있도록 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1963년 출시 이후 50년 가까이 약국 이외의 곳에서 판매된 적이 없던 박카스가 22일 홈플러스 서울 영등포점을 시작으로 대형마트에 선보이자, 소비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박카스를 생산하는 동아제약은 당장 생산 물량을 늘릴 계획도, 약국 공급분의 일부를 마트 등으로 돌릴 생각도 없어 박카스 품귀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26일 홈플러스에 따르면 22일~26일 4일 동안 박카스만 약 5,000병이 팔렸다. 이는 알프스, 타우스, 가스명수, 생록천, 위청수, 안티프라민 등 다른 새 의약외품 6종을 포함한 전체 판매액의 60% 수준. 홈플러스는 관계자는 "마트에서 박카스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여겨진데다, 약국 판매 가격(500원)보다 50원이 싸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23일부터 서울 성수점에서 450원에 박카스를 판매 중인 이마트 관계자 역시 "예상보다 인기가 좋다"라고 전했다.
박카스가 인기몰이를 하자 다른 유통 업체들도 가세하고 있다. 28일부터 의약외품을 판매할 예정인 롯데마트는 아예 전국 30개 점포에서 박카스를 팔 계획이다. 훼미리마트와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도 각각 서울지역 20개, 30개 점포에서 박카스 등 의약외품을 선보인다. 기업형슈퍼마켓(SSM)중에서는 롯데슈퍼가 28일부터 박카스를 판매한다. 이들 업체들은 하나같이 물량만 확보되면 판매 점포 수를 늘릴 계획이다.
문제는 현재 박카스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 박카스를 만드는 동아제약에 따르면 박카스의 1개월 평균 생산량은 약 3,000만 병. 이 중 87%(약 2,600만 병)는 동아제약이 직접 운송차에 실어 약국에 배달하고, 나머지 13%(약 400만 병)는 도매상에 공급한다. 그리고 도매상 공급량 중 약 60%(약 240만 병)는 5~6개 대형 도매 회사가 취급하고 있는데, 대부분 제품은 동아제약이 직접 공급하지 못하는 약국에 대신 제공하고 있다. 결국 현재 약국 말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박카스는 월 평균 약 160만 병(하루 평균 약 5만3,000병) 정도에 불과하다.
동아제약은 "물량을 늘리려면 생산 설비를 새로 놓는 등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는 생산확대가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대형 도매 회사들도 아직까지는 유통업체들에 공급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도매회사 관계자는 "박카스 판매 마진은 5~7%인데 물류비를 빼면 남는 게 없다"며 "박카스의 상징성 때문에 고객(약국) 관리 차원에서 약국에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밝혔다. 반면 약국과 거래량이 많지 않아 이들의 눈치를 덜 봐도 되는 소형 제약 유통업체들만 물량을 유통 업체 등으로 돌리고 있다.
때문에 유통업체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박카스 구하기가'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아직은 시범 판매 단계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앞으로 소비자들이 더 많이 찾게 되면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통업계에서는 "동아제약이 생산량을 늘리거나 약국 이외로 보내는 양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동아제약은 난감한 표정이다. 우선 약국들이 대형마트 수준에 맞춰 박카스 가격 인하에 대한 부담을 느끼면, 동아제약에게 '대형 유통 업체에 물량을 주지 말라'고 압박할 수 있기 때문.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형 유통업체들이나 소비자들이 찾는 양이 늘면 약국 눈치 보느라 공급량을 늘리지 못했던 동아제약이 결국 생산량 증대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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