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 '세계 최고의 마케팅 무대' 벼른다
1923년 아버지가 억지로 떠맡긴 음료회사를 키우기 위해 고민하던 로버트 우드러프는 5년 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 4회 올림픽에 눈을 돌렸다. 그는 미국 대표팀에게 1,000 상자의 음료를 공짜로 보냈다. 미국 선수들이 마시는 갈증을 씻어주는 시커먼 물은 곧바로 대회장에 모인 세계인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음료가 입소문을 타자 곧바로 우드러프는 네델란드에 공장을 짓고 본격적인 유럽 판매를 시작했다. 코카콜라가 미국의 음료에서 세계적 음료로 거듭난 계기였다.
우드러프가 미국 대표팀에 보낸 콜라는 본격적인 올림픽 마케팅의 효시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코카콜라는 2020년 하계올림픽까지 공식 올림픽 파트너(TOP) 계약을 따내며 최장수 스폰서가 될 수 있었다. 코카콜라 관계자는 "행복을 추구하며 지역사회와 함께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겠다는 것이 경영 철학"이라며 "두 가지 경영철학이 잘 맞아 떨어진 것이 올림픽이었고 올림픽 후원을 통해 세계적 회사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코카콜라 사례는 기업들이 왜 스포츠 마케팅에 매달리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들에게 세계규모의 각종 스포츠 대회는 시장을 넓히는 기회다. TV와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 브랜드가 지속 노출되는 세계 대회는 계산하기 힘들 만큼 마케팅 효과가 크다.
여러 스포츠 이벤트 중에서도 전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은 단연 스포츠 마케팅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올림픽은 출발부터 기업의 후원을 받았다. 188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조직되고 1886년 제 1회 아테네 올림픽이 개최됐을 때 비용을 조지 아베로프 등 자선가들이 대부분 지원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게 되자 필름업체인 코닥으로부터 나머지 경비를 조달했다.
올림픽을 통한 스포츠 마케팅은 '윈-윈'효과가 있다. IOC와 개최국은 비용과 현물을 제공받아 금전적 부담을 덜고, 후원기업은 브랜드를 전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된다.
비자카드가 전세계 결제 시장의 60%를 점유할 수 있었던 것도 1986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후원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비자카드는 올림픽 경기장 곳곳에 카드를 이용한 현금인출기를 마련해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는 또 다른 돈'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국내 유일의 올림픽 공식후원사인 삼성전자도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 정보통신 분야 공식 올림픽 파트너로 선정되면서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 났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여러 올림픽에 무전기와 휴대폰을 후원해 브랜드가 알려지면서 다른 제품까지 후광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마케팅은 기업들의 이미지 변신에도 효과적이다. 일본 브라더공업은 1984년 LA올림픽에 정보기기 공식업체로 참가하면서 재봉틀 회사의 이미지를 벗었다. 마쓰시타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 후원사로 참여하면서 미국에서만 통용되던 파나소닉을 전세계 브랜드로 확대했다.
하지만 올림픽 마케팅이 지나친 상업주의로 치달으면 역효과가 난다. 대표적 사례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다. 아디다스에 밀려 공식 파트너 자격을 얻지 못한 나이키는 개별선수를 후원하는 전략을 폈다. 그 결과, 나이키 후원을 받은 미국 농구 선수들이 금메달 시상대에 올라 올림픽 공식파트너인 아디다스 상표가 붙은 선수복을 입을 수 없다며 성조기로 윗도리를 가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올림픽과 기업 마케팅 간에는 적절한 결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대회 운영과 선수들의 기량 뿐 아니라, 스포츠 마케팅 면에서도 또 하나의 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올림픽이 상업성과 아마추어리즘의 조화를 꾀하는 것처럼 기업도 올림픽 정신을 살려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며 "상업적 효과가 낮더라도 기업과 사회의 장기적 공생을 위해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대기업들 각종 국제대회 후원
비인기종목인 수영과 육상 등 아마추어 종목에서도 기업들은 뛰고 있다. 세계 육상선수권이나 수영선수권 대회에는 올림픽ㆍ아시안게임 못지 않은 스폰서 기업들이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펼치고 있다.
현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수영선수권대회에는 니콘, 오메가, 스피도 등 6개 글로벌 기업이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으며 내셔널 스폰서 기업만 20여 개에 달한다.
국내 기업 중에선 SK가 이번 수영선수권대회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박태환이 400 ㎙에서 금메달을 획득, 국민영웅으로 다시 부상되면서 2007년부터 그를 후원해온 SK텔레콤도 '박태환효과'를 만끽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유니폼 등에 새겨진 로고 등 브랜드가 TV를 통해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기업 인지도 제고에 큰 몫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65억 명이 지켜보게 될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8월27일~9월4일)도 기업들에겐 좋은 비즈니스의 공간이다. 국내 기업중에선 삼성전자와 포스코가 이번 대회주관기구인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공식 글로벌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어, 대회 성공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특히 생산재(철강) 기업으로 소비자와 접점이 적은 포스코는 이번 대회 기간 내내 경기장 인근에 홍보부스를 설치, 국내외 관람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기업이미지 제고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대구 대회의 내셔널(국내) 파트너인 대한항공과 KT도 항공 지원과 경기장 등에 통신망 설치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 삼성, 무선통신으로 올림픽 접속
"현재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백색가전 이외에는 참여할 기회가 없어 보입니다."
근대 올림픽이 부활한 지 100주년이 되던 1996년. 당시에는 올림픽 유치만큼이나 공식파트너(후원사)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 도약을 위해 올림픽 스폰서에 꼭 참여하고 싶었지만 여건은 만만치 않았다.
삼성전자가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정했던 무선통신 분야를 올림픽 스폰서 메인 타이틀로 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글로벌 휴대폰 업체인 모토로라가 이미 올림픽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IOC에선 백색가전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손쉬운 백색가전 보다는 힘들더라도 무선통신 쪽을 계속 노크했다. 특히 올림픽이 전 세계인의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공식파트너가 특정 국가에만 쏠려 있는 것은 문제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IOC에 지속적으로 어필했다. 실제로 당시 올림픽 스폰서들은 IBM 코카콜라 모토로라 등 대부분 미국 기업이었다.
삼성전자는 올림픽이 지구촌의 축제인 만큼, 아시아 기업이 후원하면 올림픽 본연의 의미가 더 살아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 전략은 결국 적중했다. IOC로부터 "삼성이 무선통신 분야로 스폰서를 확보할 기회가 생겼다. 단, 3일 안에 결정을 해야 하는데 협상에 응하겠느냐"는 전갈이 날아왔다. 삼성전자가 오케이 했음은 물론이다.
97년3월 삼성전자는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 올림픽 공식 후원사 계약을 따냈다. 그리고 이듬해 열린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공식파트너로서, 본격적인 마케팅 활동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올림픽 마케팅을 통해 최첨단 무선통신 기술을 알리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올림픽 홍보관은 자크 로게 IOC 위원장과 각국 선수 등 VIP들의 필수 방문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막대한 홍보 효과를 올리고 있다.
10년이 넘는 올림픽 공식 후원활동을 통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도 5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 평가기관인 인터 브랜드에 따르면 1999년 32억 달러에 머물렀던 삼성 브랜드 가치는 2010년에는 194억9,0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품질개선이 가장 먼저겠지만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는 데에는 올림픽 마케팅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후원계약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릴 2016년 하계올림픽까지. 하지만 2018년 평창 올림픽이 확정된 만큼, 당연히 스폰서계약을 연장한다는 방침이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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