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5시 기사 마감에 정신이 없었던 서울 영등포경찰서 출입 기자들에게 '도청 관련 참고'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일제히 도착했다. 문답 형식으로 된 이 이메일에는 '사건 관련하여 장○○ 기자가 그 경위에 대해 회사에 보고한 내용은 ○○○라는데 사실인지?' '회사에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아직 확보하지 못했는가' 등 특정기자가 민주당 도청의혹 사건에 대해 취재를 한 사실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기자들은 내용을 알 수 없는 자료 배포에 의아해 했다. 가려진 내용이 무엇인지 취재에 나서는 기자도 있었고 코미디 같은 상황에 허탈하게 웃는 기자도 많았다. 사실 암호문 같은 이메일이지만 이번 사건을 추적보도하고 있는 기자라면 누구나 추가취재를 통해 쉽게 특정기자의 취재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담겨 있다.
문제의 이메일은 두 시간 전 기자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안동현 수사과장과 나눈 30분간의 대화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취재원이 특정기자와 나눈 대화내용을 모든 언론사 출입기자에게 배포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모욕적인 취재방해 행위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수사과장은 자초지종을 묻는 기자에게 "해당 사실이 보도된 이후 타사의 항의가 우려된다"고 해명했다. 이마저도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다. 취재한 내용이 다 기사화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기사화가 예상되더라도 타사 항의 때문에 취재사실을 전 언론사 기자들에게 알린 것이라니. 함께 기사를 쓰든지 혼자서는 쓰지 말라는 소린가. 이런 소심함과 보신주의로 어떻게 민주당 도청의혹이라는 큰 사건을 수사하겠다는 것인지 되레 안쓰럽다. 이게 수사의 주체로 서겠다는 경찰의 모습인가.
이정현 사회부기자 joh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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