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남의 잔치'가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 기록과 한국 기록의 차이가 워낙 심해 한국육상이 시상대에 설 자리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보의 김현섭(26ㆍ삼성전자)이 이 같은 우울한 전망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남자20km에 출전하는 김현섭의 올 시즌 세계랭킹은 9위. 중국선수 2명이 1~4위를 차지하고 있어 실제론 7위에 해당한다. 기록차이는 1분. 김현섭을 지도하는 이민호 코치는 "김현섭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만리장성 텃세에 가로막혀 동메달에 그쳤지만 당시 중국팀의 홈 어드밴티지가 많이 작용했다. 따라서 대구 세계선수권에서 김현섭이 홈 어드밴티지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불이익만 당하지 않으면 메달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경보 국제심판인 조덕호 삼성전자 육상단 부장은 "김현섭이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메달권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히 좌절했다. 그러나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심리적 안정감이 플러스 알파 요인"이라고 말했다. 조 부장은 이어 "경보는 9명의 심판이 경기를 샅샅이 지켜본다. 무릎이 완전히 펴지지 않는 등 단 한번의 실수로도 심판으로부터 레드 카드 판정을 받을 만큼 엄격한 종목이다. 실수를 줄이는 것이 메달사냥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정만화 코치가 지도하는 남자 마라톤도 단체전에서 반드시 시상대에 서겠다는 각오다. 한 국가에서 5명이 출전, 상위 3명의 기록을 합산해서 순위를 정하는 단체전은 번외경기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됐다. 하지만 한국은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건 경험이 있다. 정코치는 "지영준(30ㆍ코오롱)과 정진혁(21ㆍ건국대)을 투톱으로 대회 개최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경보와 마라톤을 제외하고 다른 종목으로 눈길을 돌리면 한국육상은 여전히 먹구름이다.
2007년 케냐 몸바샤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집행이사회를 통해 대회 유치를 확정 한 지 흐른 4년여 시간은 선수발굴과 양성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감안해 한국 육상은 대구 세계선수권에서 안방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10-10프로젝트(10개 종목에서 10명의 결선 진출자를 배출)'를 추진해 왔다. 운이 좋으면 마라톤 개인전에서도 메달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특정 종목을 제외하고 기록만 놓고 보면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10-10프로젝트도 메달사냥에 실패했을 경우 쏟아지는 비난에 대비해서 면피용으로 급조했다는 평이다.
한국은 역대 세계육상선수권을 통틀어 단 1개의 메달도 얻지 못했다. 199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대회에서 김재룡이 마라톤에서 4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성적이다. 2009년 베를린대회선 역대 최대규모의 선수단을 출전시켰지만 대부분이 20위권에 머무르는 최악의 성적을 낳았다.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은 당시 선수들의 패배의식과 지도자들의 무사안일에 격분, 일대 쇄신에 나서 이듬해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 4개(마라톤1ㆍ 멀리뛰기2ㆍ 허들1)를 따내는 깜짝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선수권은 올림픽과 같은 권위를 인정받는 무대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회가 비록 안방에서 열리지만 한국육상에 메달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은 신청 한다고 해서 모두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다. IAAF가 정한 AㆍB 기준기록(2010년 1월1일~2011년 8월15일 작성)을 충족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A기준기록 통과자는 나라마다 최대 3명만 출전할 수 있다. 만약 A기준기록 통과자가 없으면 B기준기록 통과자 1명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한국은 개최국 프리미엄으로 모든 종목에서 1명의 선수를 내 보낼 수 있다.
7월 현재 AㆍB기준 기록을 통과한 한국 선수는 29명이다. 하지만 마라톤과 경보 등 로드레이스를 제외한 트랙과 도약, 투척종목에선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남자 110m 허들의 박태경(31ㆍ광주광역시청)이 A기준 기록을 통과했을 뿐이다.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은 "한국육상의 기량이 메달권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하지만 경보와 마라톤 단체전 등 틈새 종목에서 이변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영조 마라톤 기술위원장도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이 즐비한 케냐 등에서는 2시간 4~5분대 선수들이 상금을 적게 준다는 이유로 세계선수권 참가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점에서 우리 선수들이 끈기와 투지로 밀어 붙인 다면 뜻밖에 대어를 낚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육상계는 이와 함께 세단뛰기의 김덕현(25ㆍ광주광역시청)과 창던지기 박재명(30ㆍ대구시청)에게도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특히 김덕현은 5월 대구국제육상대회에서 예상 邦?금메달로 자신감에 차 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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