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시 선배(16회)가 야심적으로 내놓은 서민층 채무 탕감 방안에 대해 후배(23회)가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업무 추진 때 만전을 기하라"는 훈시와 함께. 선배가 금융기관 사장으로 오기까지 7년간 야인(野人)생활을 하는 사이, 후배는 금융감독당국의 수장이 돼 있었다. "당국과 협의 없이 채무 감면 조치를 발표했다"며 김병기 서울보증보험 사장을 공개 경고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얘기다.
김 위원장은 26일 "서울보증보험이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으로서 건전 경영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라며 "당국과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부채 감면 조치를 발표하는 등 불필요한 오해와 우려를 초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사장은 한때 김 위원장이 '모시던' 행시 선배였다. 김 사장이 2004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기획관리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김 위원장은 그 밑에서 금융정책국장으로 일했다. 김 사장이 재경부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지낸 2년 뒤 김 위원장이 그 자리(6대)를 이어받기도 했다.
오랜 야인 생활 끝에 서울보증보험 사장에 취임한 김 사장은 21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생계형 서민 채무자 20만명의 대출 원금과 연체 이자를 감면하겠다는 친서민 대책을 의욕적으로 내놓았다. 이는 서울보증보험이 대출 보증해준 81만3,193명의 22%로, 채무 원리금은 8,964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서울보증보험이 외환위기 이후 12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고, 아직도 8조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한 서울보증보험이 자칫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금융위의 판단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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