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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누구의 '희망버스'인가

입력
2011.07.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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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기막힌 작명(作名)이다. 인간적 존엄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 공동체문화를 바로잡고자 하는 양심, 연대라는 보충설명이 오히려 구차하다. 인간에게 희망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는가. 삶의 원천이고, 미래다. 희망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 때문에 누구나 희망을 좇을 권리가 있으며, 아무도 함부로 그것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 당당하고 멋진 명분이다.

희망버스의 승객들은 외친다. 우리는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 달려간다고. 그들에게 그들이란 우리 사회 모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좁게는'수백만 정리해고자와 비정규직들'이며, 지금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들과 200일 넘게 그들을 위해 고공크레인에서 홀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의 김진숙 위원이다.

한진중공업 분규는 회사가 1월 6일 근로자 400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김 위원의 고공시위도 그때 시작됐다. 회사도 물러서지 않았다. 2월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170명을 정리해고했다. 희망버스가 처음 부산을 찾은 것은 파업이 반년이나 이어지던 6월 11일이었다. 여론 조성이 목적이었다. 사측의 무책임과 부당함, 해고자들의 억울함을 세상에 널리 알려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도록 돕자는 것이었다.

갈 길 벗어나는 이상운행

그러나 희망버스는 그 길로만 가지 않으려 한다. 스스로 말한 순수와 평화와 평등, 아름다운 문화와 거리가 먼 곳으로 달린다.'자기들 식구'만 공동체로 생각할 뿐, 또 다른 이웃들의 희망을 꺾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커진 권력으로 응원이 아닌 간섭과 월권을 일삼으려 하고 있다. 노사합의에 대한 존중도, 부산 시민들의 불편과 고통, 법과 질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부산시민이 앞을 가로막건 말건 30일에도 달려가려 한다.

이제 희망버스의 외침은 이렇게 바뀌었다. '누구도 우리의 행진을 막을 수 없다. 소수의 행복을 위해 다수가 짓밟히고 눈물 흘려야 하는 이 추악한 근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겠다. 30일 부산은 유신독재를 무너뜨렸던 부마항쟁의 함성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부산은 제2의 광주로, 제2의 6ㆍ10항쟁으로, 제2의 촛불광장으로 열리어 나갈 것이다.'

희망버스가 마치 브레이크가 터진 것처럼 왜 이렇게 난폭하고 위험한 버스로 변하고 있는 것일까. 과잉진압, 여론의 왜곡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핑계대지 마라. 희망버스라고 아무 곳이나 달리고, 마구 충돌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희망버스는 자기만의 희망만을 좇는 그런 이기적이고 정략적인 존재가 아니었나.

그게 아니었다면 승객들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정말 희망버스를 타서는 안 될, 탈 자격조차 없는 그런 사람들이 기회는 이때다 하고 버스에 오르거나, 주변에 몰려들어서는 확대 해석으로 정치적 이념과 이익을 챙기려 한다. 24일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노동계, 정치계,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나온 300여명이 행사를 열면서 붙인 이름 역시 '희망 시국회의 200'이었다. 그들에게 한진중공업 사태는 사내분규가 아니라 정권투쟁의 수단이 되어 버렸다. 그들을 막기는커녕 두 손 들어 환영하고, 심지어 은근히 타기를 강요까지 한 희망버스도 마찬가지다.

시위가 해결책은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한진중공업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설령 외부의 입김과 정치적 타협의 반강제적 방식으로 해결했다고 하자. 그것이 과연 진정한'희망'이 될 수 있을까. 힘들더라도 노사 당사자들이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고통을 나누며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정부나 국회, 희망버스의 역할도 그것을 위한 중재, 조정, 응원이어야 한다. 다른 속셈으로 편을 가르고, 상대를 비난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것으로는 어떤'희망'도 건져 올릴 수 없다. 상처만 남을 뿐이다.

희망버스가 차별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달리는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희망과 평화까지 짓밟아서는 안 된다.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어느 버스에나 브레이크는 있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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