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간)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이 노르웨이에서 76명의 목숨을 앗아간 다음날, 멕시코 경찰은 마약조직 두목 불마로 살리나스 무노즈(33)를 살인과 납치 혐의로 체포했다. 범죄 동기가 다르고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두 사람. 그러나 이들의 행적을 보면 둘 다 십자군전쟁 때 활동했던 템플기사단의 일원을 자처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브레이빅은 1,500쪽의 선언문에서 자신을 템플기사단으로 칭했고 재판에서도 기사단 제복을 입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지난달 21명의 납치ㆍ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무노즈가 속한 조직은 아예 그 이름이 템플기사단이다.
두 사람이 중세 교회조직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한 이유는 폭력행위에 대한 정당성의 근거를 템플기사단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22일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마약조직 템플기사단은 '신사로서 행동하고 여성을 존중하라'는 계율을 가지고 있다. 자기들은 마약을 팔면서도 중독자를 재활시설에 보내고 도둑이나 강간범을 납치해 교수형에 처하기도 한다. 크리스챤사이언스모니터는 이 같은 이중성을 "범죄 활동으로 이익을 얻어 지역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개입하려는 것"으로 풀이했다.
알자지라는 이들이 종교단체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은 공포심 및 경외심을 조장해 신비감을 주고 내부의 일을 밖으로 알리지 않으려는 계산된 행동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브레이빅이 템플기사단을 끌어 쓴 목적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폭력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템플기사단은 십자군전쟁이 한창이던 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출범한 종교기사단이다. 솔로몬 신전 터를 본거지로 시리아나 팔레스타인에 성을 쌓고 성지를 방어했다. 기독교 보호라는 대의를 위해 무슬림을 토벌할 적법성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14세기 초 교황 클레멘스 5세와 프랑스왕 필립 4세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돼 해산됐는데, 템플기사단이 성배를 손에 넣는 등 기독교 근간을 위협할 비밀을 간직하고 있어 탄압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현대 극우주의자들은 템플기사단을 부패한 구질서에 희생당한 '성스러운 전사'로 여기기도 한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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