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23일 서울 성수동 N복권방. '연금복권 520'을 사겠다는 이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27일 발표되는 4회차는 이미 며칠 전 매진된 상황. 주인 장모(53)씨는 "5회차 복권도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연금복권의 인기는 노후 준비에 대한 서민들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매주 630만장(장당 1,000원)씩 63억원의 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도 늘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당첨금으로 수십 억원의 목돈이 주어져 단번에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나눔로또와 달리, 매년 500만원씩 20년 동안 연금식으로 당첨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노후 생활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35)씨는 "지금껏 복권을 구입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연금복권에는 관심이 간다"며 "이번에 30장을 샀는데 앞으로도 매주 조금씩 구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금에 대한 갈망은 결혼 상대를 구할 때도 두드러진다. 경기지역 초등학교 여교사 한모(31)씨는 맞선시장에서 그야말로 인기 상한가다. 판ㆍ검사, 의사, 대기업 직원 등 이른바 '잘 나가는' 직종 남성들의 맞선 요구가 잇따른다. 한씨는 "여교사 남편들이 아내의 노후 연금을 일종의 '보험'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며 "다소 찜찜한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높은 인기가 싫지는 않다"고 말했다.
실제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최근 3년간 남녀 회원 22만 여명이 상대에게서 만남을 수락 받는 비율을 직업군별로 분석해본 결과, 여성 중에서는 교사(62.0%)가 압도적인 1위였다. 선우의 이미나 매니저는 "여성이 원하는 남성의 직업도 은퇴 후 연금을 받는 공무원, 교사 등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당장의 호화로운 생활보다 안정적인 노후 대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비현실적인 희망에만 매달리는 건 아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개인연금, 연금저축, 변액연금 등 생보사 연금상품 초회 보험료는 2008년 3조3,999억원, 2009년 4조2,220억원, 2010년 5조9,573억원 등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신규 연금 가입 고객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생명 이광호 차장은 "사망 후 일시금을 받는 종신보험보다 노후에 꼬박꼬박 연금을 받는 연금상품에 대한 고객 선호도가 훨씬 높다"며 "특히 20, 30대 젊은 층의 연금 가입이 늘어나는 게 요즘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전했다.
노후에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맡기고 매월 연금식으로 생활비를 받아 쓰는 주택연금, 일명 역모기지론도 인기몰이 중이다. '자식들에게 집을 물려줘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던 당초 예상을 깨고, 2007년 7월 출시 이후 4년 만에 가입자가 5,730명에 달한다. 작년 9월 경기 시흥의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한 남모(67)씨는 "5년 전 퇴직하고 딱히 고정 수입이 없었는데 월 79만5,000원씩 연금을 받게 되니 새로 취직한 기분이 들어서 삶에도 자신감이 생겼다"며 "늙어서는 돈이라도 있어야 힘이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고 말했다.
연금에 대한 인기를 등에 업고 연금형부동산도 등장했다. 최근 한 유통회사가 '대기업에서 월세를 받으니 남편보다 든든하다'라는 광고 카피를 앞세워 10년 월세 임대 조건의 분양에 나서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투자 리스크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미 상당수 투자자들을 끌어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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