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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좋아 '무더위 쉼터'… 중고 선풍기만 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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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좋아 '무더위 쉼터'… 중고 선풍기만 덜덜

입력
2011.07.2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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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쉼터? 그런 거 몰라. 알아도 왔다 갔다 힘들어서 못 가.”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21일 오후 정헌풍(88)할아버지가 홀로 사는 서울 은평구 산골 아래 통일로 575번지. 3평 남짓한 쪽방 기온은 31~32도로 바깥보다 3도 이상 높았다.

정옹은 1986년 하던 약국이 부도난 이후 아내, 친아들, 그리고 길에서 데려다 키우던 세 아이와의 연락이 두절됐다. 친자식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도 못 받은 정옹이 폐지를 모아 버는 돈은 한 달에 7만~8만원 정도. 유일한 냉방 수단은 중고 선풍기 한 대가 고작이다. 가까운 곳에 무더위 쉼터가 있지만 할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서울시가 올해만 2,979개를 지정한 무더위 쉼터가 대부분 부실 운영돼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시에 따르면 전체 무더위 쉼터 중 85%(2,535곳)가 동네 경로당을 지정한 것으로, 별도 예산 지원 없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는 쉼터 안내 간판이나 환자용 생수, 응급대처요령 안내문 등을 갖추지 않고 있다.

전체의 13%(387곳)인 주민자치센터나 2%(57곳)인 보건소 등 기타 시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기능이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옹의 쪽방 인근에 있는 응암제일경로당 입구에는 쉼터 간판이 없다. 이 곳 노인들은 “이 곳이 무더위 쉼터라는 소린 처음 듣는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들여놨지만 2005년 제작된 중고 에어컨 송풍구는 사용한지 오래된 듯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응암동 녹신경로당은 재개발 지구라 경로당 역할도 제대로 못 하는데 무더위 쉼터로 지정됐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13.2%)이 가장 높은 중구가 무더위 쉼터로 지정한 황학경로당은 5년 전 들어온 에어컨 한 대가 있었지만 99년 생산된 중고다. 관리자는 “매달 구청에서 운영비를 주지만 무더위 쉼터 예산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도 사정은 비슷해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경로당에 안내간판은 물론 병원 응급실 연락처 안내판도 없다. 송파구의 경우 에어컨이 한 대도 없는 곳이 36곳(전체 195곳)이나 된다. 강남지역의 취약계층 밀집지역인 구룡마을, 전원마을에는 무더위 쉼터가 없다.

시의 총괄부서인 도시안전과는 시내 쉼터 주소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 도시안전과 관계자는 “지식경제부의 에너지 고효율 제품 보급 예산으로 8월 이후 경로당 에어컨을 대폭 교체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선진국들은 취약계층 밀집지역에 무더위 쉼터를 지어 구호품 등 필요한 장비와 시설을 갖춘다”며 “우리도 폭염기에는 독거노인에게 전화를 하거나 직접 방문해 안부를 파악하는 등의 실질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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