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은 노후생활자금의 성격이 강하다. 국민연금도 있지만 고령화로 갈수록 급여수준이 떨어지고,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개인연금 가입도 여의치 않은 마당에 믿을 건 퇴직금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돈을 미리 받아 생활비로 써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험연구원의 ‘중간정산 퇴직금 사용’설문조사에 따르면 생활비와 내구재 구매에 60%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노후자금을 위한 저축이나 투자는 6.7%에 불과했다.
봉급생활자들의 목돈 마련을 돕기 위한 제도가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노후생활만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퇴직금 중간정산을 악용하는 회사도 있다. 급여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퇴직금을 그때그때 주면 부담이 줄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정부가 어제 공포한 법이 퇴직금 중간정산을 제한하는‘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다.
내년 7월부터는 주택 구입이나 의료비 마련 등 정말 긴급한 목돈이 아니면 퇴직금을 쓸 수 없다. 회사가 퇴직금을 연봉에 포함시켜 매년 정산하는 것도 금지한다. 사용자가 임의로 그렇게 하더라도 퇴직금을 지급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새로 설립하는 사업장은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노동환경 변화로 한 직장 근속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를 감안해, 퇴직연금 가입자가 이직 등으로 받은 퇴직급여도 개인형 퇴직연금(IRA)으로 옮겨 은퇴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적립해 나갈 수 있게 했다.
100세 사회,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퇴직금의 중간유출을 막고, 퇴직금의 연금화를 통해 노후소득을 보장하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더구나 연금제도는 강제적 사외적립으로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안정화시켜 준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노후 준비는 고사하고, 당장 대학학자금 등을 위해 퇴직금이 아니면 빚을 내야 하는 저임금 근로자들도 많다. 임금피크제가 퇴직금에 미칠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폭 넓은 의견 수렴과 보완, 현장 지도를 통해 또 하나의 중요한 노후보장제도가 잘 정착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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