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1963년 토끼띠 동갑내기다. 사진을 찍을 때도,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사이 좋은 친구처럼 말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한 사람은 영화사를 설립한지 16년이나 된 베테랑 제작자, 또 한 사람은 이제 막 데뷔식을 치른 초보 감독이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애니메이션 회사 오돌또기의 오성윤 감독, 두 동년배의 영화 이력은 한국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듯했다. 두 사람을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힘을 모은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암탉')은 명필름과 오돌또기의 조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고질병으로 지적돼온 이야기 구성 능력과 상업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만남이었다. 명필름은 충무로 품질보증마크로 통하는 대표적인 영화사, 오돌또기는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애니메이션 기술력을 지녔다. 황선미 작가의 동명 원작 동화는 10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이니 출발부터 삼박자가 맞은 셈이다.
오 감독은 '암탉'을 2004년 만났다. "너무나 파격적인 동화여서 매력적"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면 아주 혁명적인 가족 애니메이션 나올 것이란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늘그막에 뻔한 애니메이션 만들고 싶지 않다"는 욕심도 작용했다. 심 대표는 애니메이션 소재를 찾다가 2005년 '암탉'과 조우했다. "동화를 읽으며 눈물 흘렸고, 한국영화 사상 가장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가 될 (주인공 암탉) '잎싹'에 반해" 바로 영화 제작을 추진했다. "돈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그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기획부터 개봉을 하기까지 6년이 걸렸다. "되돌아보면 예전 오 감독의 머리 숱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체감할 수 있는 시간"(황선미 작가)이었다. 그 동안 원작을 다듬었고, 12만장의 그림과 2,000장의 배경화면을 빚어냈다. 심 대표는 "애니메이션은 상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해주지만 그것을 표현해가는 과정은 너무나 힘들었다. 매번 애니메이터들의 상상력을 억누르는 악역도 자처했다"며 웃었다. 오 감독은 "(지나치게 예술 지향적인) 한국 애니메이션의 문제를 나도 잘 아는데 심 대표가 환쟁이들의 욕구를 큰 틀에서 잘 정리해줬다. 버리는 것도 훌륭한 창작이라는 점을 많이 느꼈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결과에 흡족해 했다. 특히 이야기가 풍성하고, 여러 연령층을 만족 시킬 수 있다는 점에 만족을 나타냈다. 오 감독은 "감히 새로운 형식의 한국적 애니메이션이 나왔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제작 과정에서 어느 순간 뭔가 되겠다는 생각에 흥분하고 좋아했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면 곧잘 평가절하되는 현실을 가장 경계했다. 심 대표는 "기존 선입견 무너트리기가 가장 큰 산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 아이에게 일본 지브리나 미국 픽사 영화만 보여줘야 하나 하는 생각에 죽기살기로 일했다"고 밝혔다. 오 감독도 "선입견을 넘어서는 게 이 영화의 제작 목표다"며 동감했다.
'암탉'은 국내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먼저 녹음하고 이에 맞춰 그림의 상상력을 보탠 뒤 배우가 보충 녹음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림을 먼저 그리고 배우들이 입을 맞추던 구식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탈피한 것이다. "배우의 녹음을 꼭 먼저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연기자'로서 애니메이터 역할이 참 어렵더라. 문소리와 최민식처럼 그림이 연기를 해야 하니까. 한국 애니메이션의 취약점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오 감독)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요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정말 매력적이다. 배우로 치면 연기파들이 많다. 그런 부분에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심 대표)
두 사람은 벌써 '암탉' 이후 작업에 눈길이 옮겨간 듯하다. 심 대표는 "눈여겨보고 있는 원작이 있다"며 또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 의지를 드러냈다. 오 감독은 "생태 생명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브리 스튜디오 같은 작업실을 죽기 전 꼭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