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는 없지만 제겐 남보다 잘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아나운서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는 하지만 25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아나운서 위촉장을 받아 든 이창훈(27)씨의 감회는 그런 시쳇말로 감당하기 어렵다. 시각장애 1급인 이씨는 지난달 20일부터 한달 간 KBS가 진행한 첫 장애인 뉴스 앵커 선발시험에서 무려 523대 1이라는 경쟁을 뚫고 국내 방송 사상 최초의 장애인 앵커가 됐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에서 1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생후 7개월에 앓은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한때 사지마비까지 찾아와 “사람 구실 못할 것”이라는 걱정까지 샀지만 이를 이겨내고 8세 때부터 맹학교에서 점자를 익히며 학업에 열중했다. 서울신학대와 숭실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2007년부터 한국시각장애인인터넷방송(KBIC) 진행자로 활동하며 방송인의 꿈을 키워왔다.
위촉장을 받은 뒤 이씨는 보도국 뉴스 스테이션에서 국혜정 아나운서와 함께 뉴스 진행 시연을 해 보였다.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 텍스트 파일로 된 뉴스 원고를 손으로 짚어가며 편안하고 믿음직한 음성으로 원고를 읽어 내자 주위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준비 없이 들어온 속보도 무리 없이 소화해 냈다. 진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어머니 이상여(57)씨는 현장에서 아들의 뉴스 진행 모습을 지켜본 뒤 “꿈을 일궈 낸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항상 밝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KBS와 1년간 계약하는 이씨는 위촉식 후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며 “꿈과 희망을 전하는 앵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많다”며 자신의 ‘성공담’이 “장애 극복이나 인간승리 식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롤 모델로 삼는 앵커는 KBS1 9시뉴스를 진행하는 민경욱 기자. 이씨는 “(민 기자의)생동감 있는 뉴스 진행능력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3개월 간 앵커 실무 교육을 받은 뒤 가을부터 정식으로 일반뉴스 진행에 투입될 예정이다. 임흥순 KBS 과학재난부장은 “발음이 정확하고 특히 뉴스에 대한 지식과 안목, 진행 능력이 뛰어났다”고 선발 이유를 밝혔다. 이씨가 성격이 밝고 침착해 발전 가능성이 큰 것도 좋은 점수를 받은 요인이었다. KBS는 250만명(등록장애인 기준)이 넘는 국내 장애인들에게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 매년 한차례 장애인 앵커를 선발할 계획이다.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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