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추동마을. 구름도 안개도 쉬어가는 지리산 자락, 아랫마을에서 30분 남짓 차를 타고 들어가야 겨우 보이는 네 가구가 전부인 작은 마을에 아랫집 윗집 사이 좋은 동서지간이 산다. 이상엽(83), 최삼엽(75) 할머니가 주인공. 웃는 모습이 꼭 닮아 자매 같은 이들은 한 집안으로 시집와 어느덧 56년을 함께 했다.
25~29일 오전 7시50분 KBS1에서 방송하는 '인간극장'의 '지리산 두 할머니의 약속'편은 세월만큼이나 쌓인 정도 깊은 두 할머니의 사연을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담았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한 6남매 맏아들에게 시집와 어린 시동생들 키우랴 농사일하랴 갖은 고생을 다한 이 할머니와 그의 노총각 시동생에게 열아홉에 시집 온 최 할머니는 성격도 스타일도 정반대. 하지만 바늘과 실처럼 꼭 붙어 서로의 곁을 지켜왔다.
천둥 번개가 치는 날이면 얇은 베개 하나 꼭 끌어안은 채 형님네 문을 두드리는 만년 소녀 최 할머니. 반면 이 할머니는 웬만한 일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 여장부 스타일이다.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동서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형님 역시 덤덤한 척 하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도 외지로 나간 지금 동서뿐이기는 마찬가지다.
샘도 많고 탈도 많은 동서지간이라지만 할머니들은 녹차 밭도, 병원도, 미용실도 꼭 붙어 다니며 지난 56년간 친자매처럼 지냈다. 그런데 늘 웃음을 잃지 않던 최 할머니의 얼굴에 요즘 수심이 가득하다. 지난해 12월 막내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마음의 병이 커진 것. 자식들은 쇠약해진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형님이 있는 지리산을 선뜻 떠날 수가 없다. 세상에 온 때는 달랐지만 마지막은 꼭 함께 하자는 두 동서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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