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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세계적 브랜드 와규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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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세계적 브랜드 와규의 추락

입력
2011.07.2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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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가 한국산 쇠고기를 의미하듯 와규(和牛)는 일본산 쇠고기를 뜻하는 보통명사다. 하지만 와규가 갖는 브랜드의 힘은 여느 쇠고기와 비할 바가 아니다. 와규는 세계 유명 특급호텔이나 일류 음식점의 고급 요리에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재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와규의 명성이 높아지고 수요가 늘어나자 일본의 대표적 와규 생산지인 고베(神戶) 등의 소 종자가 호주 등지로 수출되는 등 전세계로 와규가 공급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와규와 미국 블랙앵거스 종을 교배한 혼혈종 와규가 수입돼 한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을 앞두고 한우를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고 싶어하는 한국 농가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

최대의 위기 맞은 와규

도호쿠(東北) 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현, 미야기(宮城)현도 일본의 대표적 와규 생산지이다. 이 지역 와규의 맛이 뛰어난 이유 중 하나는 사료로 먹이는 볏짚에 있다. 서해안에 비해 건조한 날씨에서 만들어진 사료는 육류를 연하게 하고 육즙을 많게 하는 지방의 분포, 이른바 마블링의 조화를 배가시키는 데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이 지역에서 건조된 볏짚 사료를 전국 각지에서 구매하고 있다.

세계적 브랜드로 이름 날리는 와규가 요즘 일본 안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최악의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인근 농가에서 방사성 세슘에 오염된 볏짚을 사료로 먹인 와규가 일본 방역 당국의 검사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시중에 유통됐기 때문이다. 오염 볏짚을 먹은 소가 유통된 건수는 지금까지 집계된 것만 2,600여 마리로, 이중에는 일본 정부의 기준치를 378배나 초과한 세슘에 오염된 볏짚을 먹은 소도 있다.

사태의 심각성은 오염소가 후쿠시마산에만 그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150㎞ 이상 떨어진 미야기현이나 이바라키(茨城)현에서도 오염소는 발견되고 있다. 홋카이도(北海道), 기후(岐阜), 아키타(秋田)현 등 일본 외곽지역 농가에서는 후쿠시마나 미야기에서 제조한 볏짚을 구입해 소사료로 사용하면서 오염을 확산시켰다. 이런 식으로 퍼져나간 오염소가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 46개 도도부현에 유통됐다. 사실상 일본 전역이 오염소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오염소중 일부가, 누구보다 방사선에 취약한 초등학생 학교 급식에도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오염소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와규 가격도 급락하고 있다. 교도(共同)통신에 따르면 19일 도쿄도 중앙도매시장 식육시장에서 거래된 와규(거래소 A-4등급 기준)의 1㎏ 평균가격은 607엔(8,100원). 15일 거래가 1,414엔(1만9,000여원)에 비해 절반 가량 떨어졌다.

정부는 여전히 뒷짐

이번 사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외부 피폭만 염두에 두는 바람에 사료를 통한 내부 피폭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후쿠시마에서 수백㎞ 떨어진 지역의 토양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고 있는 마당에 사료에 의한 피폭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오히려 와규의 명성에 흠이 갈 것을 우려, 검역에 소극적으로 임한 것이 사태가 커지게 한 원인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전히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정부의 태도다. 오염소를 살처분하거나 오염소 검출지역의 소에 대한 전수 조사 실시 여부 등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또 다른 곳에서 오염소는 유통되고 있고, 소비자의 식탁에 올라오고 있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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