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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北 주민 남한 재산 상속권 첫 인정 판결 이끈 배금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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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北 주민 남한 재산 상속권 첫 인정 판결 이끈 배금자 변호사

입력
2011.07.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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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송준비만 꼬박 1년 난관의 연속… 北 가족찾기·친자확인 과정 선교사 도움 컸죠"

지난 12일 북한 주민의 남한 재산 상속권이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부장 염원섭)는 이날 북한 주민 윤모(69)씨 등 4명이 남한에서 아버지와 결혼한 권모씨와 이복형제자매 5명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등의 소송에서 권씨 등이 가진 상속분 일부를 윤씨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의 조정이 성립됐다고 밝혔다.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서울 영등포구의 부동산 등을 포함해 2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결정의 반향은 상당했다. 북한 주민의 남한 재산 상속권이 인정된 건 분단 이후 처음이었다. 관심은 소송을 제기한 북한의 윤씨 등과 남한의 권씨 등은 어떤 관계인지, 왜 법적 공방을 펼치게 됐고 그 동안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법원의 결정이 있고 난 다음 날, 서울 서초구의 해인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배금자 변호사를 만났다. 배 변호사는 이번 소송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윤씨 측의 소송 대리인을 맡았다. 그는 "북한의 형제들을 대신해 이번 소송을 제기했던 남한에 있는 장녀는 언론노출을 극히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배 변호사는 이번 소송의 배경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배 변호사는 이번 소송의 의미를 상당 시간 강조했다. 그는 "북한 주민이 남한 상속 재산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했던 건 이번을 포함해 두 번에 불과하다. 그나마 2001년에야 처음 있었고(당시 사건은 당사자들 간 합의로 소송이 취하됐다), 이번 사건은 10년 만의 일인데, 법원에 의해 상속권을 인정한다는 결론이 났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의 달뜬 말들에선 그 동안의 노고를 이렇게 보상받았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묻어났다.

처음 소송이 제기된 건 2009년이었지만, 일의 진행은 이전부터 시작됐다. 아버지 윤씨는 1987년 사망했다. 그 전에 식물인간 상태로 7년을 보냈다. 상속에 관한 유언도 사실상 없는 상태였다. 장녀는 "아버지가 '북한에 있는 본처와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며 사실상 재산 관리인인 계모에게 재산분할을 호소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만 태우다가 2008년 배 변호사를 찾아왔다. 소송밖에 답이 없었다. 꼬박 1년을 준비했다.

소송 준비는 북한에 있는 가족을 찾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장녀 윤씨는 외삼촌을 통해 북한의 형제자매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구체적인 주소를 몰라 연락은 불가능했다. 소송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소송 당사자를 찾을 수 없었던 것. 배 변호사는 "이산가족 신청도 했지만, 가족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교사를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이 분께 유일하게 알고 있던 6ㆍ25 당시 주소를 알려줬다.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막무가내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선교사는 이후 남한의 장녀 윤씨, 배 변호사와 북한 주민간 메신저 역할을 했다. 북쪽 동생들이 작성한 소송 위임장도, 친자 확인을 위해 동생들이 법정에 제출한 유전자(DNA) 검사용 머리카락과 손톱의 전달도, 모두 선교사가 몫이었다. 배 변호사는 "지금 북한은 몇 십 달러만 주면, 북한 정부 관료들이 기밀 자료까지 빼 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 가족을 찾은 일은 그렇게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도 북한 가족과 연락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배 변호사는 "아버지는 북한 가족을 위해 몇 번이고 사람을 보냈다. 기록물을 보면 남에서 보낸 간첩과 탈출을 시도했다는 게 나온다. 게다가 가장이 월남했으니, 남아 있는 가족은 반역자로 몰려 살아왔다. 이들에 대한 사상 및 동향 감시 보고서가 최근까지 기록돼 있더라"고 했다.

배 변호사는 소송을 위해 철저히 사전 작업을 했다. 친자확인소송(지난해 12월 인정. 현재 항소 진행 중)으로 북한의 윤씨 등이 상속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확인한 한편, 아버지 윤씨가 중혼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등록부 정정도 이끌어냈다. 배 변호사는 "올 2월 서울남부지법으로부터 본처인 김씨의 사망일과 사망장소를 바로잡아 남편 윤씨의 가족등록부를 고쳤다"고 했다.

애초 1933년 김씨와 결혼한 윤씨는 장녀만 데리고 월남했고, 1959년 권씨와 만나 새로 가정을 꾸리며 본처는 1952년 서울 영등포구에서 사망한 것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정정된 가족부에는 1997년 4월 미수복지구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다. 1959년 이후 1997년까지 38년 동안 아버지 윤씨는 중혼(重婚) 상태였음을 확인한 것. 배씨는 "누락됐던 북한 자녀들도 새로 아버지 가족부에 등록했다"고 했다.

배 변호사는 "인정된 상속분이 당장 북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일단 모든 소유 권리는 장녀 윤씨가 가지게 되며, 매달 일정 금액을 북으로 생활비조로 송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북한 주민은 북한 당국 몰래 주로 일본을 통해 특정계좌를 개설, 일정 소액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현재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특례법이 제정될 경우 상속 재산은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얻어야 북으로 보낼 수 있다. 배 변호사는 "자유로운 재산처분권을 막는 법이다. 친자관계가 성립하면 상속권이 생기는 것이고, 관리와 처분은 상속받은 사람이 선택할 몫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 2001년 유사소송 대리 남북가족간 합의로 취하

북한에 살고 있는 윤모씨 가족이 12일 법원에서 남한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인정받은 일을 두고 혼선이 있었다. 일각에서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 반면, "전에도 유사한 소송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온 것. .

그러나 취재결과, 판결 효력이 있는 조정을 거쳐 상속권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1년 6월 북한 주민이 남한의 친부를 상대로 상속권을 주장하기 위해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양측이 합의를 거쳐 소를 취하함에 따라 판례를 남기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 소송 역시 배금자 변호사가 대리했다. 배 변호사는 "북한 주민이 남한의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해 자신들의 신분상, 재산상 법적인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1936년 황해도에서 장모씨와 결혼해 6명의 자녀를 뒀던 손모씨는 6ㆍ25 전쟁 당시 장남과 넷째 아들을 데리고 남하했다. 이후 다른 여성과 만나 재혼했고, 북한에 있는 나머지 가족을 제외한 채 새로 호적을 만들었다.

1990년 손씨는 해외동포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했다. 서신 왕래를 시작했고, 사망하기 직전인 1999년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 직접 만나기도 했다. 손씨는 장남에게 70억원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 중 절반을 북한 가족에게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북한의 호적등본을 입수해 재판부에 제출하는 등 이후 과정은 이번 윤씨 사례와 동일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소송은 결국 남측 가족과 북측 가족 간 합의로 취하됐다.

배 변호사는 "소송 진행 중에 상속세 미납에 따른 가산세가 계속 늘어나 상속 재산이 다 없어질 지경에 이르자, 양측이 합의를 했다"고 했다. 합의 결과, 손씨의 상속재산 일부를 북한 가족의 몫으로 하고, 이를 장남이 맡아 관리하게 됐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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