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이목이 22일 인도네시아 발리로 집중됐다. 남북간 첫 비핵화 회담이 열린 것을 계기로 북미회담 가능성마저 제기되자, 현지에 파견된 각국 대표단과 보도진은 일제히 남북 비핵화 회담이 열린 발리의 웨스틴호텔로 몰려 들었다.
회담 10분 전인 이날 오후2시50분(한국시간 오후3시50분) 미리 회담장에 도착한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각본 없이 회담에 응할 것"이라며 유연하게 대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잠시 후 은갈치색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수행원들과 함께 회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 부상은 위 본부장과 만나 악수하며 "안녕하십니까. 리용호입니다"라고 인사했고, 위 본부장은 "2004년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토론회에서 만난 뒤로 처음 뵙습니다. 건강해 보이십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잠시 기억을 떠올리던 리 부상은 웃으면서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라고 화답했다.
회담장에 우리측 6석, 북측 5석의 자리를 마련한 외교통상부가 회담직전 자리 배치를 급하게 바꾼 것도 눈길을 끌었다. 외교통상부관계자는 "통상 호스트가 상석인 오른쪽에 앉지만, 북측에 양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 본부장은 2009년 3월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은 이래 한 번도 6자회담이 열리지 않아 북측 수석대표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강석주 부총리와 김계관 외무상 제1부상의 뒤를 이어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은 리 부상도 이번 회담이 '데뷔 무대'였다. 이에 따라 이날 회담은 상견례 성격이 컸다. 그러나 2년7개월 만에 다시 만난 남북은 2시간여 동안 폭 넓고 깊숙한 대화를 이어갔다. 회담장엔 이도훈 청와대 행정관도 배석했다.
2시간여 동안의 회담이 끝난 뒤 취재진 앞에 다시 나타난 위 본부장과 리 부상의 얼굴은 만족스러운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회담이 성공적이었다는 신호였다.
당초 이날 회담 성사 가능성이 처음 감지된 것은 북중 외교장관 회의에서였다. 오전 9시43분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묵고 있는 닛코호텔로 찾아온 박의춘 북한 외무상은 회담 테이블에 앉자마자 오른쪽의 리 부상을 양 외교부장에게 소개하며, "앞으로 6자 회담을 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6자 회담 수석 대표였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지난해 제1부상으로 승진한 뒤에도 누가 후임자인지 공식 발표한 적이 없었다. 박 외무상은 양 외교부장에게 이날 오후 열릴 남북한 6자 회담 수석 대표 회동 등에 대해 미리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간 만남이 이뤄진 것을 계기로 회담장 주변에선 이르면 23일 북미간 직접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 대표단의 한 관계자도 "이곳에 좀 더 머무르고 싶다"며 여운을 남겼다.
발리=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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