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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외국계 자산운용사, 한국 토종 CEO가 접수 "한국문화 이해 못하면 선진 금융기법 소용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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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외국계 자산운용사, 한국 토종 CEO가 접수 "한국문화 이해 못하면 선진 금융기법 소용 없어요"

입력
2011.07.2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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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의 글로벌 기업이라도 한국에만 오면 번번이 굴욕을 당하기 일쑤다. 미국 월마트가 입성 8년만인 2006년 자존심을 꺾고 자진 철수했고, 2007년 본격 진출한 구글도 이후 지금껏 네이버나 다음 등 한국 업체에 맥을 못추고 있다. 오죽하면 외신에서도 "한국은 세계적 기업의 무덤"이란 얘기까지 나올까. 결국 한국 소비자의 특성을 간파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글로벌 기업이라도 낭패를 본다는 것인데, 이를 곱씹고 현지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곳도 있다. 국내 자본시장에 진출한 외국계 운용사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영업하려면 '연줄'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결과"라고 한다.

외국계 운용사, 토종사장 전성시대

현재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운용사는 81곳. 이중 외국계 기업이 22곳(27%)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2000년대 초ㆍ중반 단독 또는 합작법인으로 대거 진출한 결과다.

그런데 이 가운데 외국인이 최고경영자(CEO)인 곳은 피델리티자산운용 한 곳에 불과하다. 지난해까지 외국인 대표 체제였던 하나UBS자산운용(2007년 진출)과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1997년 진출)도 최근 진재욱 대표와 전용배 대표를 각각 선임했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도 작년 5월부터 조규상, 임태섭 공동대표 체제로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올 초엔 2008년 합작 이후 외국인 대표를 고집하던 교보악사자산운용이 정은수 대표에게 전권을 맡겼다.

한국 진출 초반만 해도 외국인 사장 일색이던 운용 업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업계 특성상 운용사 대표도 '영업맨'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운용사는 개인 고객은 물론이고 투자자금을 위탁하는 연기금과 펀드 판매를 대행하는 증권사ㆍ은행에게도 늘 허리를 숙여야 하는 '을(乙)'의 존재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판매처가 거부하면 팔 방법이 없기 때문에 CEO까지 나서서 영업을 뛰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펀드 수익률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자금을 끌어오는 마케팅 능력이 중요하다"며 "일반 기업과 달리 운용사 사장은 학연, 지연 등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판매 창구를 뚫고 자금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맥 사회인 한국, 그것도 영업이 핵심 경쟁력인 운용업계에서 생판 모르는 외국인 사장에게 돈을 맡기는 곳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한국 고유의 투자문화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투자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선 만기 1년 펀드는 단기 투자로 분류되지만 한국 고객들은 "장기간 묵혀뒀구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교보악사자산운용 관계자는 "외국계 본사의 매뉴얼에 따라 상품을 출시하면 내부 시뮬레이션과 상품에 대한 의견조정 등 6개월의 준비기간이 더 필요한데, 한국에서 이렇게 하다가는 장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 흐름에 민감한 한국에서 다양한 테마펀드가 자주 출시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중하게 6개월 준비기간을 거쳐 나오는 펀드는 뒤쳐진 상품이 되기 싶다.

토착화에 성공 거둔 이들

일찌감치 현지화를 서두른 회사들이 한국인 사장으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면 토종사장 전성시대도 없었을 터. 2007년 출범 때부터 ING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는 최홍(50) 대표도 지금의 전성기를 이끄는 데 한 몫 했다.

최 대표은 2003년 국내 최초로 적립식 펀드를 만들어 펀드 돌풍을 주도한 인물이다. 중ㆍ고등학교 수석졸업, 서울대 출신, 미 컬럼비아대 박사 등 이력만 보면 곱게 자란 엘리트로 보이지만 사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성공했다.

유아 때 아버지는 행방 불명되고 어머니가 재혼하는 바람에 부산의 무허가 판자촌에서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생존을 위해 공부를 했다는 그는 지금은 20조원을 굴리는 회사 사장이 됐다. 4년전 11조원이던 수탁액을 두 배 이상으로 불려놓은 것. 최근엔 독특한 이력 하나를 추가했다.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넣으면 웃통 벗고 근육질 몸매를 뽐내는 사진과 함께 '쿨가이', '몸짱' 등 연관 검색어가 뜬다. 지난달 말 한 남성잡지 주최로 열린 대회에서 20대 청년들을 제치고 몸짱 1위로 등극해서다.

전용배(50)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사장은 취임 1주년이던 이달 1일 기념식을 열지 않았다. 대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현장에 나가 영업을 뛰었다. 이 회사 영업ㆍ마케팅 총괄자에서 대표로 내부 승진한 그는 단기간에 국내 사업 영역을 넓히는데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6월 7조원이던 자산 규모를 1년 만에 9조5,000억원으로 급성장시켰고, 같은 기간 보험사ㆍ은행ㆍ연기금 등 기관 고객으로부터의 유치자금도 5조8,000억원에서 7조6,000억원으로 늘렸다. 이 회사의 'FT포커스 펀드'는 지난 한해 50%에 육박하는 수익률로 국내 주식형펀드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다. 전 사장은 "올해 말까지 자산규모를 10조원으로 확대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상품을 해외에 소개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가장 최근 외국계업체 CEO 대열에 합류한 정은수(50) 교보악사자산운용 사장은 증권사(대우)와 운용사(알리안츠), 생보사(교보ㆍ하나알리안츠생명)에서 쌓은 경험이 무기다. 정 사장은 "증권사는 단기, 운용사는 중기, 보험사는 장기에 초점을 맞춰 전략을 짜는데, 이들 3개 업종을 두루 경험한 게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정 사장이 1월 취임한 이후 이 회사의 국내펀드 수익률(연초 후~7월 19일 기준)은 13.93%에 이른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수익률(6.18%)의 두 배를 넘는 최상위권 성적이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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