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정면 겨냥해 한마디 했다. 청와대는 공식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속이 편할 리 없다. 울화통이 터질 만 하다. 얼마 전 이 대통령과 식사를 하며 화합과 신뢰의 잔을 부딪친 홍 대표였다. 한참 동안 뒷통수가 얼얼했을 것이다.
홍 대표는 이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못한다"고 했다. 또 "회사 경영하듯 국가를 경영한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무시하는 인사 스타일도 꼬집었다.
집권 여당 대표 발언치고는 강도가 세다. 하지만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멀리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껏 이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에 신뢰를 보인 적은 거의 없다. 의례적 수사(修辭)만 있었을 뿐이다. 정치권은 늘 이 대통령이 국회를 국정의 주요 축으로 생각하는지 의심스럽다고 볼멘 소리를 해댔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여당 대표가 공개 리에 작심하고 언급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홍 대표, MB와 결별 수순 밟나
한편으론 홍 대표의 입장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홍 대표 앞에 놓인 지상 과제는 내년 4월 총선 승리다. 이를 바탕으로 한나라당은 12월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 그가 보기에, 또 한나라당(특정 계파의 시각일 수도 있다)이 보기에 이 대통령은 플러스 요인보다는 마이너스 요인이 더 많은 상수다. 홍 대표의 발언은 이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 또는 극단적으론 이 대통령과의 결별까지도 염두에 두고 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원인은 역시 이 대통령에게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과 내용이 국민 지지를 얻고 있다면 홍 대표가 그런 발언을 했을 리 없다. 거꾸로 이 대통령 덕을 보려 했을 것이다.
홍 대표가 거론한 인사 문제만 봐도 그렇다.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인선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후 이 대통령에게 쏟아지던 호평을 혹평으로 바꿔 버렸다. 평창 효과는 봄바람에 눈 녹듯 사라졌다. 영부인을 사석에서 누님이라 부른다는 장관 내정자, 이래저래 권력 핵심과 연이 있고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검찰총장 내정자. 특정 지역ㆍ대학 출신들을 4대 권력기관장에 앉힌데서 보듯 집권 초기부터 줄곧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고소영 강부자'식 인사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대통령의 편협함에 국민들은 냉소를 보내고 있다.
여기에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 등 생활 물가, 심각한 전세ㆍ월세난, 물거품이 된 반값 등록금 공약, 상승곡선만 그리는 청년실업, 끝없는 공공기관 비리, 말뿐인 금융감독 개혁, 사교육만 부추기는 교육, 꽉 막힌 남북관계 등 어느 현안 하나 대선 당시 국민이 기대한 이 대통령의 리더십과 능력이 빛나 보이지 않으니 국민들은 답답함에 가슴만 칠 뿐이다.
MB, 위기를 기회로 살려야
그러나 위기는 대처하기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돌파구는 이 대통령의 한나라당 당적 포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전례를 볼 때 시기적으로 이른 감은 있다. 그러나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면 주저할 이유도 없다. 여의도 정치와 완전 결별할 수는 없겠지만 중립적 위치에서 총선과 대선을 관리하려는 의지를 제대로 보여준다면 불필요한 억측이나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 여의도 정치를 혐오하면서 굳이 정치의 한복판에서 허우적댈 시간이 이 대통령에겐 없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보수든 진보든 불문하고 함께 품으면서 3년 반 동안의 국정 운영 경험과 기업 CEO형 리더십의 특장점을 제대로 살려 꼬인 현안을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그것이 이 대통령이 추구하는 실용 아닌가. 1년 반은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반복해온 실책을 지금처럼 계속 되풀이할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일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인지 선택은 오롯이 이 대통령 몫이다.
황상진 편집국 부국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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