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쇼크/테드 C 피시먼 지음·안세민 옮김/반비 발행·496쪽·2만원
그 누구도 바라지 않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늙음'이다. 이 노년의 기간이 길어지며 예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거대한 노년층의 도래는 전세계의 삶과 문화에 커다란 효과를 미치고 있다.
이 책은 고령화와 노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고령화의 답을 찾기 위해 급속한 노령화의 최전선인 일본, 제조업의 몰락과 고령화가 서로를 가속화하는 미국 록퍼드, 고령화를 새로운 발전 기회로 삼는 플로리다의 휴양도시, 이민 수출국에서 이민 수입국으로 전환된 스페인, 산아제한의 뜨거운 결과물을 안고 고민하는 중국 등을 찾아 나섰다. 그는 세계의 고령화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92세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자신도 노인인 스페인의 한 여성은 이렇게 하소연한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어요. 감옥에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요. 저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래요.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어머니를 먹이고 씻겨야 해요. 저는 제 집에 유괴당한 기분입니다." 노인 부양이 가족의 몫인 나라에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고령화는 수많은 문제를 낳고 있는데, 특히 노동부족 현상은 인력의 이동을 이끌었고 이는 세계화의 갈등을 야기한다. 젊은 인구를 유출시키는 개발도상국과 젊은 인구를 빨아들이는 선진국 사이에도, 또 토박이들과 이주 노동자들 사이에도 긴장을 일으킨다.
웨일즈에서 만난 폴란드 노동자는 "폴란드에서 부동산을 구매해 집세를 받아 살려고 하지만 지금 폴란드엔 사람이 없어 그러기 힘들어요.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버려서 젊은이들이 남아있지 않아요. 폴란드에서 사람을 쓰려면 벨로루시나 우크라이나에서 데려와야 하죠. 그런데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가면 또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아요. 결국 카자흐스탄이나 조지아에서 또다시 데려와야 해요"한다.
이런 고령화의 부담을 계속해서 개인이나 가족으로 떠넘기려는 국가와 시장, 그런 부담을 감당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개인 사이에도 긴장이 흐른다. 중국은 인구 조절을 위해 한 자녀 정책을 시행해왔다. 하지만 이젠 한 자녀 가정의 아이가 성장해 혼자서 조부모 4명에 부모 2명을 부양해야 할 시기다. 어른 6명이 아이 1명을 돌보는 것은 부담이 되지 않지만 1명이 노인 6명을 돌보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책은 고령화가 빚어낸 다양한 갈등의 맥락을 살핌으로써 그것이 단순히 개인과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시장 국가에 이르기까지 전 사회적인 조정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문제임을 보여주려 한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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