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1시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10시간 동안 진행된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 3차 공판은 CSI의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한국과 캐나다의 대표 법의학자들이 사인을 놓고 자존심을 건 대결을 펼쳤기 때문이다. 피고인 측은 캐나다 토론토대 법의학센터장 마이클 스벤 폴라넨 박사를 내세웠고, 검찰 측에서는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 박재홍 법의관 등 한국의 대표 법의학자들이 총출동했다.
공판의 핵심 쟁점은 사인. 폴라넨 박사는 “내가 부검을 했다면 국과수와는 다른 방법으로 했을 것”이라며 “부인의 목 부위 피부까짐, 팔ㆍ다리 멍 등은 목졸림에 의한 사망일 경우에 고유하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고측 증인 이윤성 교수는 “국과수에서 보내온 부검자료와 소견서를 보면 목 부위 피부 까짐과 피부 속 출혈 등은 목졸림에 의한 사망 징후"라며 "피해자는 술, 약, 빈혈에 의한 어지러움 등 이상자세가 될 만한 선행요인이 없었다"고 말했다. 피고인 백모(31)씨 측이 제기한 '이상 자세에 의한 질식사'로 타살이 아니라는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오후 들어 폴라넨 박사는 실제 시신으로 실험한 결과를 담은 자신의 논문을 언급하며 “사망 후 피가 한쪽으로 쏠리면 얼마든지 피해자와 같은 시반(屍斑)성 출혈이 나타날 수 있다”며 “목졸림에 의한 죽음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부인의 부검을 집도했던 국과수 박재홍 법의관은 "시반은 일반적으로 넓고 연하게 생기는데 피해자는 몸 특정 부분에만 관찰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의사 출신인 피고인 백씨가 증인에게 직접 질문을 하며 자신을 적극 방어하기도 했다. 이윤성 교수가 당시 욕조 내 혈흔이 거의 없었던 것을 두고 "목졸림을 당한 피해자의 혈압이 다소 떨어져 출혈량이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자 듣고 있던 백씨는 "목졸림 도중 혈압이 제로가 되는 게 아니므로 피는 계속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되묻는 등 양측은 재판 내내 팽팽한 공박과 신경전을 펼쳤다. 재판은 오후 9시가 넘어 마무리 됐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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