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거듭된 발언을 들으면서, 국내에서는 잘못한다는 언론의 질타만 받고 있는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의아스러우면서도 '진짜 그런가' 하는 자부심을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심지어 올해 미 의회 신년 국정연설에서는 "한국에서는 교사가 국가건설자로 대접 받고 있다. 미국에서도 교육자들을 그렇게 대접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제는 자부심을 넘어 책임감이 막중하게 느껴진다.
교육의 본질은 공평한 기회 부여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의 평가에서 놓친 게 있다.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되던 가난한 나라를 G20 국가로 끌어올린 한국 교육의 뒤에는 본인의 삶을 온전히 자녀교육에 쏟아 부은 서민가정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있었다. 필자도 그런 부모의 헌신으로 교육을 받게 되어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한국가정의 부모들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교육이 열성과 외형 면에서는 미국으로 수출할 만한 수준인지 모르겠으나, 교육의 내용과 질은 계속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왕 미국 연설 듣는 김에 이번 달에 퇴임하는 게이츠 국방장관이 올해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했던 연설 한 토막도 들어 보자. 공직생활 45년 동안 미국 대통령 8명과 일한 그가 생각하는 인재상은 "오늘의 문제를 뛰어넘어 내일 이후를 바라보며 가능성과 잠재력을 분별해 내는 비전이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성공의 기회를 허용하는 조용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 교육이 키우려는 인재상도 유사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교육이념을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창의인재 육성'으로 표방하고 초중등교육에는 창의적 체험활동 제도를, 대학교육에는 입학사정관 제도를 도입해 인재를 육성코자 한다.
좋은 결과를 내려면 충분한 투입이 있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경제논리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부모의 계층, 거주지역에 관계없이 교육에서 성공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주어지게 하는 것이 교육정의를 확보하는 길이다. 주요 대학들의 입학전형에서 입학사정관제의 비율이 급속히 늘고 있는데, 서민가정이나 일반고, 농어촌 등 보통 가정의 학생들과 부모들은 잘 모르고 교사들도 잘 모르고, 설사 안다고 해도 비용이 많이 들어 개별적인 소질이나 창의성을 높일 경제적 여력이 없다. 이미 강남의 사교육시장에는 입학사정관제 컨설팅이라는 고비용 특수 상품이 시판 중에 있다고 한다.
입학사정관제 시행 초기 단계에서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청소년교육을 책임지는 기관들은 초중등학교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공교육과정이 계층과 지역에 편차 없이 실시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교육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최근 영국 정부는 교육정의 실현에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영국 판사의 75%, 고위직 공무원의 50%가 사립학교 출신이고, 의사나 변호사들은 평균보다 70%이상 소득이 많은 가정에서 배출된다.
공교육 개혁 고삐 늦춰선 안 돼
영국에서 공립학교 출신자가 성인이 되어서 사회계층에서 뒤쳐지는 이유는 부모의 정보력과 인맥 네트워크에서 밀리고 공립학교에서 다양한 학습기회를 제공하지 못해서 미래 경력에 큰 힘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국정부가 앞으로 공교육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 한 예가 기초학력에 미달된 학생에게 일대일 맞춤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서민친화 또는 복지정책으로 뒤늦게 좌회전 깜박이를 켜기 시작한 우리나라 정부, 여당이 눈 여겨 보아야 할 타산지석이 아닌가.
이명숙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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