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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칼럼] 병영문화 혁신의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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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칼럼] 병영문화 혁신의 절박함

입력
2011.07.2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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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여 년 전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대학 선배 한분이 던진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33개월 푹 썩고 나왔으니 세상이 다르게 보일 거라는 말이었다. '푹 썩었다'는 표현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전역 후 바라본 사회는 3년 전의 사회와 무척 달라 보였다. 군복무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변했고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도 달라졌으리라. 주변 친지들은 군대 갔다 와서 철이 들었다는 '칭찬'도 했지만, 재학생들은 고리타분한 예비군으로 대접했다.

가혹 행위가 필요악이라는 해병대

최근 해병대 2사단 총기 난사 사건 등 잇단 사건ㆍ사고로 군내 구타ㆍ가혹 행위가 드러나면서 병영문화혁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병영문화혁신 대토론회에 참석해 해병대가 전통이라고 여기는 구타와 가혹행위, 집단 따돌림 등은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한편 총기사고 이후 실시된 '해병대 장병들의 구타·가혹행위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25%의 장병이 '구타ㆍ가혹행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총기사고 전의 46%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많은 장병들이 구타, 가혹행위를 필요악으로 보고 있음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아직도 '귀신 잡는 해병'을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관행이 아니겠냐는 목소리가 있고, 해병대 뿐 만 아니라 모든 군은 계급사회이며 무기를 지니고 적을 물리쳐야 하는 특수조직사회이기 때문에 일반사회와는 다른 문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도 있는 것 같다.

정녕 그렇지 않다. 군이 명령 계통을 중시하는 계급사회이며 전쟁을 수행할 특수조직이지만, 그 조직의 운영원리는 분명 민주적 원칙에 따라야 한다.

구타와 가혹행위로 군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기수열외'의 따돌림으로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무모하다. 일방적 상명하달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어려운 것이 현대전의 특징 아닌가.

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군의 민주화는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직결되어 있다. 군의 문화를 바꾸면 우리사회의 문화를 바꿀 수 있다. 군 경험을 한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인정하듯이 군은 구성원의 사회인식과 사고방식, 그리고 행동양식을 변화시킨다.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 가정과 학교, 동료집단, 직장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군대만큼 강력한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는 없는 듯하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20세 전후의 모든 남성들은 2년 동안 훈련과 임무수행은 물론 의식주를 비롯한 기본적 생활과 여가활동 등 일체의 생활을 병영 내에서 한다. 등ㆍ하교와 출퇴근을 통해 여러 집단과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러한 병영생활을 통해 권력과 권위, 권리와 의무, 신뢰와 책임, 인권과 국가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군이 정치사회화의 중요한 매개체이며 결국 우리사회의 민주화에 필수적 공헌을 할 수 있음을 공감한다면 우선 현재 장병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행동규범과 군에서 행해지는 교육훈련, 정신교육 등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군의 폭력성, 비민주성, 비합리성 등 왜곡된 병영 문화를 과감히 청산하고, 규율과 기강, 엄격함과 단호함의 병영문화가 개방과 소통의 민주적 가치와 공존할 수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군도 개방과 소통의 가치 지향해야

'비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진다'고 한다. 최근 불거진 사건을 거울삼아 인권존중의 문화, 소통을 통한 의사결정, 한마음 한 몸의 공동체정신으로 군의 명예를 되살리는 작업을 본격화해야 한다. '푹 썩어서' 나오는 군대가 아니라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안고 전역하는 청년들을 배출하는 군으로 변화하는 만큼 우리사회도 민주적 사회로 바뀌게 된다. 우리의 자식들이 땀 흘리고 있는, 앞으로도 복무할 군이다. 온 힘을 결집하여 군을 바로 세우자.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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