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임기 말과 다음 정부의 사법부를 이끌어갈 차기 대법원장 후보 지명이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9월 24일 임기 6년을 마치고 퇴임할 예정이라,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을 감안하면 늦어도 다음달 말쯤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새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 정부가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보다는 현직 고위 법관들 위주로 대법관을 임명해 왔다는 점에서, 차기 대법원장 지명을 계기로 사법부가 급속도로 보수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전관예우' 논란 피할 수 있는 후보로
새 대법원장 인선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전관예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간의 관행과 달리 전직 대법관이 아니라 현직 대법관들 중에서 발탁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2008년 3월 취임한 차한성(56ㆍ경북ㆍ사법시험 17회) 대법관이나 내년 7월 퇴임 예정인 박일환(60ㆍ경북ㆍ15회), 김능환(59ㆍ충북ㆍ17회), 안대희(56ㆍ경남ㆍ17회) 대법관이 주요 후보들이다. 차 대법관과 박 대법관은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김 대법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게 강점이며 안 대법관은 검사 출신이라는 게 눈에 띈다. 모두 중도 또는 보수 성향으로 분류돼 이명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을 수 있다.
최근 퇴임한 전직 대법관들도 하마평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올해 2월 퇴임한 양승태(63ㆍ부산ㆍ12회) 전 대법관이나 지난해 8월 퇴임한 김영란(54ㆍ경남ㆍ20회) 국민권익위원장이 주로 거론된다. 양 전 대법관은 대형 법률회사(로펌)의 영입제의를 뿌리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고, 김 위원장 또한 퇴임 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신선함을 준 게 강점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대법원장이 되면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이 된다. 법원 내 신망이 높은 김용담(64ㆍ서울ㆍ11회) 전 대법관도 빼놓을 수 없는 후보다.
대법관 출신이 아닌 목영준(56ㆍ경기ㆍ19회) 헌법재판관도 후보로 거론된다. 최고 법원의 지위를 놓고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적임자로 꼽힌다.
획일적 대법관 구성, 보수화 우려도
법조계에서는 현 정부 들어 진행된 사법부의 지각변동이라는 관점에서 새 대법원장 후보 지명을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로 볼 때 대법원장 지명에서도 '코드 인사'를 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현 정부 들어 임명된 대법관은 현재까지 모두 7명이다.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대법관 정원이 13명에서 14명으로 늘어나 2008년 3월 초 임명된 차 대법관부터 올해 6월 임명된 박병대 대법관까지 7명 모두 50대 남성,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게다가 2008년 국무총리에 지명된 김황식 전 대법관이 법복을 벗으면서 지명된 양창수 대법관을 제외하곤 전원 현직 고위 법관 출신이다. 사법시험 기수에 따른 연공서열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특히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법관들이 전무해, 참여정부 때 여성(김영란, 전수안), 진보 성향(박시환), 비서울대 출신(김지형ㆍ원광대 출신)을 임명하면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꾀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이들 4명은 이홍훈 전 대법관과 함께 여성이나 노동계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판결을 하거나 소수의견을 내 '독수리 5형제'로 불렸다. 전반적으로 보수적 색채가 짙은 사법부의 이념 지형에서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김영란 이홍훈 대법관은 이미 퇴임했고,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은 올해 11월, 전수안 대법관도 내년 7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민주화 이후 사회 변화 흐름에 맞춰 소수자나 비주류의 목소리를 나름대로 끌어 안으려 했던 사법부가 현 정부를 거치면서 다시 '보수'로 회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을 쥐고 있는 막강한 자리다. 누가 대법원장이 되느냐에 따라 향후 대법관 구성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가 초기부터 줄곧 강조해 온 법치주의를 확립하려면 사법부가 중립적, 객관적으로 구성돼 민주화를 공고화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대법원장에 지명해선 절대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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