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목표로 했던 8월 임시국회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미국이 국내 사정으로 8월 초까지 한미 FTA 이행법안 처리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미국의 8월 처리에 맞춰 통과시키려던 우리 정부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한미 양국 모두 하반기 국회의 예산심의, 그리고 내년 총선과 대선 등 굵직한 정치일정이 예정돼 있어 내년 말까지도 비준을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20일 외신에 따르면 윌리엄 데일리 미 백악관 비서실장은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 및 재정적자 감축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어 의회가 한국 등과의 FTA 이행법안을 8월에 처리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모의축조심의까지 마치며 한미 FTA의 8월 비준을 주도하던 입장을 바꾼 것이다.
미국을 방문 중인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복수의 미국 주요 정치인에게서 '국가부채상한선 문제 등 정국이 혼미해 한미 FTA 비준을 9월 국회로 넘기기로 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여권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기존 8월 비준 방침을 고수할지, 아니면 미국과 보조를 맞춰 9월 이후로 미뤄야 할지 해답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이시형 통상교섭조정관은 "아직 입장 변화는 없다"면서도 "미국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유기준 의원도 "미국이 공식적으로 통보해 온 바 없다"며 9월 이후 처리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야 간 입장 차가 워낙 큰데다, 대선 등 빡빡한 정치일정 탓에 연내는 물론 자칫 내년에도 비준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9월 정기국회가 열리면 국정감사와 내년 예산안 심의가 연말까지 이어지고, 내년에는 4월 국회의원 총선과 12월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다.
더욱이 민주당은 19일 쇠고기 등 10개 분야 재협상과 추가 피해대책을 요구하는 '10+2 재협상안'을 들고 나와 한나라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민주당의 재협상안은 (한미 FTA를) 하지 말자는 소리"라며 "그렇다고 국민의 표심을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이 큰 선거를 앞두고 예전처럼 몸싸움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11월 대선을 치르는 미국 역시 일부 지역은 이미 출마 선언 후보자의 토론회를 진행하는 등 대선정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 때문에 만일 하반기 중 한미 FTA 이행법안 처리가 불발될 경우 미국 비준에 따른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연내 비준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은 실직자 피해대책인 무역조정지원(TAA)을 한미 FTA 이행법안과 패키지로 제출할지에 대해서만 여야가 이견을 보일 뿐, 백악관과 정치권 모두 한미 FTA 비준에 공감하고 있다. 따라서 미 의회가 일정을 더 늦출 경우의 부담을 우려해 8~9월 중 이행법안을 처리한다면 한국의 움직임도 빨라질 수 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양국 모두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어 부담스럽긴 하지만, 미국에서 통과만 되면 우리도 급물살을 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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