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린란드 대설원을 건넜다. 북극과 가장 가까운 땅 그린란드, 그 극한의 설원에서 펼쳐진 목숨을 건 52일간의 탐험이 무사히 마무리됐다.
홍성택 그린란드 북극권 종단 탐험대는 19일(현지시간) 오후 좌표 북위 77도 15분 17초, 서경 63도 24분 36초 지점까지 이동한 후 헬기를 이용해 그린란드 최북단 도시인 카낙(Qaanaaq)으로 향했다. 홍 대장을 비롯한 대원 3명과 남은 썰매개 10마리가 헬기로 이송됐다.
탐험대가 본격 탐험을 시작한 건 5월 29일이다. 북위 68도 52분 23초, 서경 49도 21분 33초 지점에서 개썰매를 달리기 시작해 북극권(Arctic Circle) 최남단인 북위 66도 33분을 찍고 유턴해 그린란드 최북단을 향해 북상해왔다. 모두 2,500km 넘게 이동한 대장정이었다.
한국인 최초로 그린란드의 광활한 설원에 도전했고 국내 최초로 극지역 원주민의 전통 이동방식인 개썰매를 이용한 새로운 시도여서 많은 관심이 집중됐던 탐험이었다. 또한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그린란드의 현장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탐험대는 인간은 물론 그 어떤 생명체도 살지 않는 막막한 설원 위, 순백의 무(無)의 공간에 무한한 도전의 기억을 깊게 새기고 돌아왔다.
예상못한 얼음늪에 빠져 속도 못내고
52일간의 탐험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히든 크레바스에 추락해 생사를 넘나들기도 했고, 지구온난화가 초래한 녹아 내린 설원의 얼음늪에 개썰매가 빠져 한참을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바닥 얼음 상태가 양호한 곳으로 고도를 올리면 썰매개들이 산소가 부족해 맥을 못추는 고소증세를 보이는 등 진퇴양난의 고행길이었다.
탐험대를 가장 곤혹스럽게 한 건 부족한 식량과 개 사료였다. 탐험대는 중간중간 항공기의 보급을 받아 탐험을 지속했다. 두번째이자 마지막 에어드롭을 통한 보급이 이뤄진 건 6월 21일이었다. 이때 보급된 식량과 개 사료는 20일치였다.
탐험대는 설질 등을 고려해 20일이면 충분히 탐험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름이 깊어지며 눈이 녹아 생기는 바닥의 질척임이 더욱 심해졌다. 썰매는 도통 속도를 낼 수 없었고 눈보라와 화이트아웃을 동반한 블리자드 때문에 또 여러날 운행을 멈추고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했다.
탐험 기간이 길어지며 식량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카낙으로 철수하기 일주일 전부터는 하루에 대원 3명이 라면 한 봉지만을 나눠먹으며 버텨야 했다. 개들도 많이 지쳤다. 20일치 사료를 30일치로 나눠 먹여야 했다. 탐험이 한 달을 넘어서고부터는 개들의 체력이 바닥 나 썰매에 붙들어 매도 좀체 달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배고픈 개들이 서로를 뜯어먹어
이달 9일엔 못 볼 광경이 벌어졌다. 지쳐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개들끼리 한데 엉켜 싸움이 붙었다. 힘이 달린 개 2마리가 물려 그 자리에서 죽었다. 배고픈 개들이 악다구니로 몰려들었고 개의 사체를 물어뜯어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말릴 수가 없었다. 홍 대장은 "지옥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야생의 그린란드에선 개가 개를 잡아먹는 게 흔한 일이라 들었지만, 제발 탐험 기간엔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길 바랐다. 대원들은 눈 앞에서 벌어진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한번 고기 맛을 봐서일까. 다음날 운행 중 개썰매의 꼬인 줄을 풀며 쉬는 사이 개들은 힘 없어 보이는 개 한 마리를 공격했고 또 그 사체로 제 몸뚱이들을 채웠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은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지만, 함께 탐험해온 개들의 야성이 달리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 탐험에 나설 때 16마리였던 썰매개는 2차 에어드롭 때 1마리가 보충돼 17마리로 늘었으나 마지막까지 남은 개는 10마리뿐이다. 모두 5마리가 다른 개들의 먹이로 희생됐고, 2마리는 탈진해 쓰러져 죽어 탐험대가 하얀 설원에 묻어주고 나왔다.
탐험대는 20일 오후 카낙에서 베이스캠프가 있는 일루리삿으로 이동한 후, 짐을 꾸려 덴마크 코펜하겐을 거쳐 25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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