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연수 차 미국에 머물 때 일이다. 좀 멀리 떨어진 한인가게에 다녀오다 길을 잃었다. 날은 저무는데 서툰 운전 솜씨로 낯선 동네를 뱅글뱅글 돌다 거의 울 지경에 이르렀을 즈음, 어느 집 우체통 옆에 말뚝 박아 세워놓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부시 출입 금지!" 절박한 상황도 잊은 채 한참을 멈춰 서서 깔깔 웃었다. 그 촌구석까지 부시가 찾아올 리 없건만, "내 집 마당엔 발 들이지 말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집주인의 호기라니.
신호에 걸려 서 있다가 앞차 뒤꽁무니에서 이런 스티커 글귀를 본 적도 있다. "신(God)은 공화당원이 아니다! (작은 글씨로) 물론 민주당원도 아니다!" 한 번은 지역신문에 이라크전쟁 반대 집회가 열린다는 기사가 났기에 호기심이 발동해 가보니 고작 10여명이 모여있었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전쟁 반대!"를 외치던 한 여성은 지나는 차량들이 호응의 뜻으로 간간이 울려주는 클랙슨 소리에 웃음으로 화답하며 신이 난 듯 목청을 높였다.
무언가 정치적 견해를 밝히려면 표정부터 자못 심각해져야 하는 나라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당당하다 못해 발랄하고 유머까지 섞인 그네들의 투쟁 방식이 참 부러웠다.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깊이있는 식견은 없지만, 일상에서 접한 그런 모습들이 그들의 민주주의를 그나마 건강하게 떠받치는 버팀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다 '소셜테이너'의 대표주자처럼 돼버린 배우 김여진씨를 보며 잊고 있던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한계를 딛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당당히 발언하고 행동하는 그의 용기보다는 그 발랄하고 유연한 태도에 더 끌린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상대가 고압적인 태도를 보일 때 화가 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전 재미있었어요. 사실 화 낼 필요가 없어요. 나는 내 생각이 옳듯이 저 사람은 당연히 자기 생각이 옳아요"라고 답했다. 사회적 활동이 배우로서의 경력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해 보니까 별 거 없어요. 해보면 재미있고, 또 그만큼 내 삶이 풍부해지는 건데 뭐가 그렇게 두렵겠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이 땅에서 내가 가진 무엇인가를 잃을 각오를 하지 않고도 정치적 견해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김여진씨의 존재는, 이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뛰어 '비장함을 덜어낸 즐거운 투쟁'이 가능한 사회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그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의 투쟁을 지지한다.
MBC가 만든 해괴한 심의규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해 특정인, 특정 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하거나 사실을 오인하게 하는 발언이나 행위'를 한 사람은 고정 출연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김여진씨가 첫 희생자가 돼 이른바 '소셜테이너 출연금지' 규정으로 불리지만, 그 대상은 연예인뿐만이 아니다. 누구든 MBC에 자주 얼굴을 내밀려면 모든 사회적 이슈에 질끈 눈을 감아야 한다니, 아예 '사회적 무뇌아'가 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낙하산을 타고 MBC에 부임한 김재철 사장이 누군가에게 "쪼인트 까여가며" 벌인 어처구니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번 일은 언론사이기를 아예 포기한 행위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민주주의의 기본인 생각하고 말할 자유를 빼앗는 일에 앞장 서는 걸까. 그게 MBC의 살 길이라면, 공영방송 간판이나 떼고 가라.
이희정 문화부장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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