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에 의족을 단 사고뭉치였던 소년이 있었다. 아침에 외출했다 저녁 귀가 무렵엔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치명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난 소년은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부모는 그런 그를 오히려 반겼다.
단 한번도 측은한 표정으로 아들을 대하지 않았다. 소년은 "나와 형제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형들이 신발을 신을 때, 나는 의족을 붙인다는 것뿐이었다"며 집안 분위기를 전했다. 사춘기가 시작될 때도 소년은 짜증 한 번 내는 법 없이 활달했다. 우울, 낙담 같은 단어는 애초 그의 사전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신 소년의 머리 속에는 '내일은 무슨 운동을 할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포츠를 통해 인생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소년이 처음 접한 것은 럭비였다. 11~13세 때였다. 수구와 테니스, 레슬링 등으로 영역을 넓힌 소년은 18세때 육상에 입문했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다(25ㆍ남아프리카공화국).
피스토리우스가 사상 처음으로 장애의 몸으로 8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과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일반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피스토리우스는 20일(한국시간) 새벽 이탈리아 리그나노에서 열린 레제라 국제육상대회 400m레이스에서 45초07을 기록,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A기준기록(45초25)을 거뜬히 뛰어넘었다. 45초07은 올 시즌 세계랭킹 16위에 해당하는 호기록이다.
세계육상선수권과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IAAF가 정한 AㆍB기준기록 중 하나를 충족시켜야 한다. 피스토리우스의 종전 최고기록은 45초61. B기준기록(45초70)은 통과했으나 A기준기록에는 미치지 못해 대구 세계선수권 출전이 불투명했다. IAAF 규정에는 한 국가에서 A기준기록을 통과한 선수 최대 3명까지 출전시킬 수 있다. 만약 A기준기록 통과자가 없으면 B기준기록을 충족한 선수 1명만 참가할 수 있다. 이날까지 A기준기록을 통과한 남아공 선수는 L.J 반 질(44초86)과 피스토리우스 2명뿐이다.
종아리뼈 없이 태어나 생후 11개월부터 양쪽 다리를 쓰지 못한 피스토리우스는 탄소 섬유 재질의 보철 다리를 붙이고 경기에 출전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초 피스토리우스의 주 종목은 럭비였다. 하지만 깊은 부상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하자 육상으로 눈길을 돌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막 8개월 전이었다. 천부적인 운동신경을 보인 그는 아테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장애등급 'T44(사지 절단 장애자들이 벌이는 트랙경기)'부문 100m 동메달과 200m 금메달을 손에 넣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가 각종 장애인대회에서 따낸 금메달만 30여 개에 달한다.
피스토리우스의 활약을 눈 여겨본 IAAF는 2007년 7월13일 로마 갈라대회에 그를 초청했다. 피스토리우스는 이 대회에서 400m를 2위로 골인하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IAAF는 그러나 그에게 더 이상 일반인대회 참가를 허용하지 않았다. 보철로 만든 의족을 통해 일반 선수보다 25% 정도 에너지 경감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IAAF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수는 스프링이나 바퀴 등 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을 만들어 그의 올림픽 출전도 금지시켰다. 격분한 피스토리우스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고 CAS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피스토리우스는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땐 A기준기록에 0.7초가 모자라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피스토리우스는 결국 베이징 패럴림픽 T44부문 100m, 200m, 400m를 세계신기록으로 장식하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이후 3년여가 흐른 이날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무대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그의 꿈이 마침내 실현됐다.
피스토리우스는 경기 후 "모든 이들이 응원해준 덕분에 해냈다. 꿈속을 질주한 기분이다. 오늘밤은 잠들지 못할 것 같다. 벌써 300여 개의 축하메시지를 받았다"며 기뻐했다. 그는 특히 로이터통신에 "'대구에서 만나자(See you in Daegu)' 는 말이 환상적으로 들린다"고 덧붙였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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