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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 이름은 낙원동

입력
2011.07.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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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오늘 내일이 모여 사는… 여기는 특별시 특별동

서울아트시네마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하면 친구들은 한 마디씩 살가운 핀잔을 던져준다. 대체로 이렇게.

"꼴값한다."

이 고물가 시대에 6,000원을 내고 괜찮은 영화 한 편 기분 좋게 감상하는 일을 '꼴값'이라 낮추잡는 것은, 영화관의 이름에 들어 있는 '아트' 두 음절에 대한 경외감의 반어적 표현일 텐데, 사실은 이 영화관을 감싼 동네의 그다지 '아트'스럽지 못한 분위기가 더 매력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

루키노 비스콘티 또는 장 뤽 고다르의 특별전을 보고 나와 2,000원짜리 국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대낮부터 모텔 창틀을 비집고 나온 교성과 부닥치게 되는 곳. 그래서 가슴 먹먹한 고전의 감동이 느닷없이 신생하는 육체의 에너지로 바뀌어 사지말단으로 퍼져가는 곳. 말하자면 공(空ㆍ이데아)이 곧 색(色ㆍ현상계)이며 색(섹스)이 공(아트)보다 비루하지 않다는 진리를, 이 동네에선 어렵잖게 체득할 수 있다.

여기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이다.

낙원동이라는 공간을 새삼 떠올리게 된 것은 지난달 개봉한 영화 '종로의 기적'(감독 이혁상) 때문이다. 커밍아웃한 남자배우 넷이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처럼 걸어가는 모습을 포착한 포스터가 인상적인데, 배경의 어지러운 전깃줄과 무질서한 간판이 바로 낙원동의 얼굴이다. 지하철 종로3가역 3~6번 출구를 나오면 마주치게 된다. 서울에서 가장 싼 밥값이 의아하지 않도록 낡고 서민적인, 정돈되지 않고 사람냄새 나는 서울의 표정이다.

본래 이 동네에서 유명한 건 떡이었다. 한창 때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떡집일 정도여서 '경술국치(1910) 이후 갈 데 없어진 궁녀들이 이곳에 떡집을 차렸다'는 검증 안 된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떡집은 1950년 이후 생긴 것이다. 그나마 하나 둘 자취를 감추더니 이젠 값싼 돼지갈비집과 포장마차가 모인 쪽만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국제적 관광 명소인 인사동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사이, 지하철 1호선과 3호선과 5호선이 교차하는 역세권이 이토록 낙후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서울이 가진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다. 이곳의 시간은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 웅덩이를 이룬 듯한데, 대략 YS에서 DJ로 정권이 넘어가던 무렵의 시간이 머물러 낙원동 특유의 빈티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계층과 장르를 초월한 이종문화가 그 빈티지를 핑계 삼아 공존한다.

떡집과 시네마테크와 악기 전문점과 한복집, 그리고 게이바가 사이 좋게 어깨를 맞대고 있는 풍경은 낙원동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시네필(cinephileㆍ영화애호가)과 2,500원 하던 백반이 3,000원으로 오른 것이 영 못마땅한 노인, 제 키 만한 첼로를 맨 어린 학생이 서로를 간섭 않고 무심히 지나쳐간다. 길을 잘못 든 듯 어쩔 줄 몰라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은 그 무지갯빛 퍼즐을 채우는 또 다른 조각이다. 낙원동은 그 모두를 아우를 만큼 넉넉하고 질펀하다.

낙원동의 '이종교합성'에 대한 개인적 인상은 조금 더 오래됐다. 지금은 구기동에 버젓한 집을 지어 이사간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가 허리우드극장(현 서울아트시네마, 실버영화관)과 함께 낙원빌딩에 세 들어 있던 시절의 일이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를 수강하며 한문에 재능이 없음을 아프게 깨치던 순간, 문틈으로 한 가닥 선율이 새어 들어왔다.

"십오야 밝은 둥근 달이 둥실둥실둥실 떠 오면~"

이젠 간판을 내린 원투쓰리카바레는 밤마다 느꺼운 풍악을 그치지 않았다. 거북하지만 따듯하게 쿵짝이는 그 소리는 굴원과 이백의 차가운 문장보다 늘 친근했다. 그래서 1,000년 묵은 시문의 향취가 수십 년 전통의 아귀찜 국물과 얼큰하게 어울리던 공간으로 낙원동은 뇌리에 각인됐다. 지금도 낙원동에선 유럽에서 공수해 온 예술영화의 아우라와 삶은 돼지머리의 노린내가 섞인 독특한 공기가 흐른다.

영화 '종로의 기적' 얘기로 돌아가보자.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하는 동성애자들은 "나는 종로에서 처음 친구를 만났다"고 털어놓는다. 주말 저녁에 낙원동 거리에 가보면 그 말의 뜻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남남노소'를 막론하고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동성애자들이 낙원동 거리를 자유롭게 거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혁상 감독이 들려준 나름의 분석은 이렇다.

"여기는 옛날부터 뜨내기들이 머물던 곳이래요. 사회적으로 소수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동성애자들도 있었겠죠. 이태원이 트렌디한 클럽 문화가 우세하다면, 이곳은 전통적인 공간답게 주점이 중심입니다. 가족적인 분위기가 강하죠. 그래서 숨어 있던 동성애자들이 이곳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동성애자들에겐 이 거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 기적 같은 순간이에요. 이해할 수 있겠어요?"

모두가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낙원동에 붙은 동네인 익선동에서 만난 토박이 주민 송건(69)씨는 대뜸 역정을 냈다.

"여기가 어떤 덴 줄 알어? 예전엔 양반들만 살던 데야! 어유, 그것들 사내 놈들끼리 밤새 무슨 짓들인지…"

낙원동을 찾은 여행객의 발길은 대개 낙원빌딩 2, 3층에 들어선 악기상가에서 멎는다. 인사동을 둘러보고 이곳까지 오거나, 창덕궁이나 북촌 한옥마을에서 운현궁을 거쳐 이리로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형형색색의 악기에 시선을 빼앗겼다가 이내 왔던 방향을 되짚어 간다. 그리곤 낙원동을 다 봤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낙원동이라는 공간의 진짜 매력, 곧 서로 다른 것들의 공존은 악기 상가 밖에 펼쳐져 있다. 예컨대 이렇게.

3,000원에 일곱 가지 반찬의 백반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떠는 커플이 이반(동성애자)일 수 있다. 좋지 아니한가. 여기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樂園)동, 모든 이들의 파라다이스다.

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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