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 입점하기 위해 상품공급업체는 매출액의 30% 이상을 수수료로 낸다. 매장 인테리어나 각종 판촉행사 비용까지도 울며 겨자먹기로 떠안기 일쑤다. 업계에선 '갑을(甲乙) 관계'가 가장 철저한 곳으로 주저 없이 대형유통매장을 꼽는다.
하지만 이 곳에도 갑과 을이 뒤바뀌는 경우가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다. 불황에도 두 자릿수의 신장을 구가하는 명품업체들의 콧대는 하늘을 찌를 지경. 그러다 보니 백화점이나 면세점들이 오히려 이들의 비위를 맞추는 게 현실이다. 보통의 입점업체라면 백화점ㆍ면세점이 "방을 빼라"고 하지만, 명품업체들은 거꾸로 "방을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지금 명품브랜드와 면세점 간의 기싸움은 점입가경 상황이다. 명품브랜드와 면세점 사이 뿐 아니라, 명품브랜드간의 자존심 싸움, 면세점간의 신경전까지 더해지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대표적 명품브랜드인 루이비통이 롯데코엑스면세점에 대해 오는 12월 입점계약이 끝나면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스스로 "방을 빼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매출부진. 루이비통은 국내 8개 면세점에서 매장을 운영중인데, 롯데코엑스 매출이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측 관계자는 "공항철도 2단계 구간개통 등으로 코엑스 공항터미널 이용자수가 감소하면서 면세점 매출이 떨어졌다"면서 "루이비통의 계약연장여부는 아직 양사간 협상이 진행중인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루이비통은 롯데코엑스면세점에서는 철수하는 대신, 매출실적이 좋은 인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매장을 넓히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다.
하지만 업계에선 루이비통의 이탈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라이벌인 신라면세점(인천공항)에 루이비통이 입점하게 되면서, 양측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는 것이다.
사실 '공항면세점에는 입점하지 않는다'는 오랜 원칙을 지켜온 루이비통을 인천공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신라와 롯데는 자존심을 건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공항영접까지 나오는 정성을 보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손을 들어줬고, 롯데는 이에 발끈해 법원에 계약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소송은 기각됐지만, 이 과정에서 루이비통과 롯데의 앙금은 한층 깊어졌고 결국 루이비통이 롯데측에 코엑스면세점 계약연장거부 카드를 꺼내들며 '반격'를 했다는 해석이다.
싸움의 승자는 언뜻 보면 롯데도 루이비통도 아닌 신라면세점으로 보이지만, 내막은 그렇지 못하다. 신라측이 "루이비통에만 너무 많은 혜택을 줬다"는 소문이 돌면서 루이비통과 라이벌인 다른 명품브랜드의 반발을 산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신라 측은 통상 30~40%대인 수수료를 루이비통에겐 10~20%대로 낮춰주고, 인천공항내 최고 '명당'자리에 일반 매장의 4~5배 가량 넓은 공간을 보장해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구찌가 신라 측에 상응하는 대우를 요구했지만 신라는 거절했고, 때마침 롯데가 구찌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자 구찌는 인천공항내 신라면세점을 떠나 롯데면세점으로 이전을 결정했다. 구찌 관계자는 "롯데면세점이 판매 실적도 좋은데다 제안한 자리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때 샤넬도 신라면세점에서 철수한다는 루머가 돌았다. 신라측이 강하게 부인하고 샤넬은 '노 코멘트'로 일관하면서 이 루머는 수그러졌지만, 업계에서는 샤넬이 신라의 루이비통 특별대우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달 말에는 샤넬 화장품이 롯데의 인터넷면세점에 단독 입점, "루이비통과 신라에 상처 입은 샤넬이 롯데와 손을 잡았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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