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정말 흔들리네. 어지럽기도 하고…."
지난 5일 건물 고층부에서 나타난 이상 진동에 대한 원인규명 시연회가 열린 19일 오후 3시30분 테크노마트 12층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태보'(태권도와 권투를 결합한 운동) 군무가 펼쳐졌다. 남녀 참가자 23명이 메트로놈 박자에 발을 맞춰 바닥을 구르는 동작을 시작하자 5분여 뒤 26개 층이나 떨어져있는 사무동 38층 한 사무실 책상 위의 화분이 흔들렸다. 난초가 흔들리는 게 눈에 확연히 보였으며 38층 입주자들은 진동을 직접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바닥이 아래 위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일부는 가벼운 어지럼증도 느꼈다. 38층 동아건설에 근무하는 황현순 부장은 "상하로 진동이 느껴져 속이 울렁거렸다. 보름 전 당시 진동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5일 당시는 34층 입주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상하진동을 느꼈다. 38층에 설치된 진동계측기 모니터 상에서도 잔잔하던 그래프가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진폭으로 춤을 추기 시작해 운동이 끝날 때까지 3분간 계속됐다.
대한건축학회가 이날 시연회에서 건물 고유진동수가 일치하는 2.7㎐ 주파수에 맞춰 태보 운동을 실시한 결과 지난 5일과 거의 동일한 상하진동을 재현했다. 시연에 참여한 이동근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태보 운동으로 상시 진동이 10배 정도까지 증폭돼 상층부에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공진이라는 놀라운 물리현상이 원인
시연결과가 지난 5일 사고 당시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남에 따라 이상 상하진동의 원인은 반복적인 뜀뛰기에 따른 공진 때문으로 사실상 결론이 났다. 사고 당시만 해도 지반침하나 폭우, 내부균열 등 전문가들의 온갖 추론이 나왔지만 공진현상이 실증을 통해 원인으로 확인된 것이다. 공진은 특정 물체의 고유한 진동주파수와 연동된 다른 물체의 움직임이 일치할 때 진동이 증폭되는 현상. 수직진폭을 측정한 이날 테크노마트 사무동의 상시 중력가속도는 0.7gal(1㎝/sec2)이지만 공진현상으로 인해 38층에서는 7gal로 10배나 상하 진동 폭이 커졌다. 예민한 사람은 1gal 정도만 돼도 흔들림을 느낀다고 한다.
왜 하필 5일 큰 상하진동이 나타났을까.
평소에도 미세한 흔들림을 느끼는 입주자들이 있었지만 5일에는 상하진동에 대하 느낌이 유난히 컸고 일부는 어지러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시 피트니스센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프라임산업측에 따르면 진동이 일어난 오전 10시10분께 피트니스센터는 새로 부임한 강사가 평상시와는 달리 회원 20여명에게 바닥 판을 강하게 밟는 규칙적인 동작을 30여분간 지속적으로 시켰다. 집단군무에 따른 소음과 진동이 워낙 컸던 탓에 아래 사무실에서도 민원을 제기했을 정도라고 한다.
건물은 안전한가.
공개시연을 한 이동근 교수는 "입주자들이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시연한 태보운동 정도의 진동으로는 1년 내내 계속해도 건물의 안전성에 영향이 없다"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같은 진동이 반복되면 건물에 피로도가 쌓일 수도 있고 진동크기가 높아지면 피로가 빨리 올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공진현상으로 멀쩡한 건물이 무너진 사례가 없지 않아 안전성을 완전히 확신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 교량붕괴사고는 공진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이 다리는 설계상 견딜 수 있는 풍속의 3분의 1도 안 되는 바람에 무너졌다. 1940년 7월 개통 후 불과 4개월 만이다. 1831년 영국 맨체스터 브로스턴 다리도 군대 행진 도중에 무너지는 사고가 났다.
더욱이 테크노마트는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철골구조물로 상하 진동이 쉽게 일어나는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국대 토목공학과 하동호 교수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 대비, 흔들림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동조질량감쇄기를 천정 등에 설치, 충격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라임산업 측도 상하진동을 줄이기 위해 피트니스센터에 태보 운동을 자제시키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당시 환경과 상황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는 만큼 태보를 상하진동의 단일 원인으로 볼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 대한건축학회 책임연구원으로 이번 조사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단국대 정란 건축공학과 교수는 "리듬을 탄 뜀박질이 원인으로 보이지만 2, 3개월에 걸쳐 다양한 원인들을 면밀하게 검토해 3개월 뒤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프라임산업 이석현 상무는 "대한건축학회와 협의해 세부적인 보완 대책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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