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전남 고흥군 도양읍 국립소록도 병원. 병원 1층 로비에 자리한 특별전시장은 '특별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가득 찼다. 이 병원에 입원 중인 한센병 환자들이 작가로 나선 것이다. 이들이 직접 그린 총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이날 막을 올렸다. 21일까지 사흘 간 열리는 전시는 외부와의 왕래가 뜸할 수밖에 없는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에게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전시를 주관한 곽형수 남포미술관 관장은 "한센병 환자들의 미술 활동이 오랜 투병에 지친 자신들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모(80) 할머니는 1961년 병원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나무판자에 모래로 '소록도'를 쓰고 녹두 씨앗으로 '웃음'을 쓴 본인의 첫 작품, 을 완성한 뒤였다. 정 할머니의 의욕에 감명을 받았는지 무관심했던 다른 환자들도 작품 만들기를 시도했다.
한센병 환자들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사실 녹록하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해 대부분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었고 손가락이 없어 붓조차 쥐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던 탓이다. 시력도 크게 떨어져 바로 앞 사물 조차 분간하기 힘들어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때마다 병원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손과 눈이 돼 줬다. 환자의 옆에 한 사람씩 붙어 작품 만들기를 도왔다. 수 십 차례 환자들의 생각을 물어보고 이를 그대로 옮기는 일을 반복했다.
미술 활동 자체가 처음인 환자들을 위해선 그림 재료까지 신경 썼다. 소록도의 나뭇잎, 모래, 돌, 곡식, 조개 껍질 등 천연 재료들이 선택 됐다. 환자들이 그림을 그리는 일에 생소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전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작품들은 소록도의 평화로운 풍경이나 웃음과 행복 같은 희망의 감정을 주제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해정 남포미술관 부관장은 "몸이 아픈 사람들이지만 세상을 보는 시선은 오히려 따뜻하고 희망적이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소록도- 행복한 웃음으로 피어나다'라는 주제는 이런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남포미술관 측은 "전시에 참여한 환자들이 만족해하고 있어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