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사가 미국 AP통신 평양지국에 제공한 대동강 수해 사진이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문제의 사진은 폭우로 침수된 대동강변 도로를 주민 7명이 건너가는 모습이다. AP통신은 16일 송고한 이 사진이 디지털 기술로 변형된 것으로 의심된다며 고객 언론사에 '사진 삭제(Photo Kill)'를 요청했다. 사진 속 남자들의 무릎, 자전거 등과 흙탕물의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고, 무릎까지 잠겼는데도 바지 윗부분이 젖지 않았다는 점이 사진이 변형됐다는 근거이다.
■ 조선중앙통신의 사진 조작 '전과'가 많은 점도 대동강 수해 사진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쓰러진 뒤 보도된 일련의 사진은 전문가들 사이에 조작 논란이 분분한 만큼 논외로 칠 수 있다. 2009년 1월10일 유럽의 뉴스통신사 EPA가 조선중앙통신에서 받아 전송한 김일성 광장 사진은 명백한 조작이다. 설 명절을 맞아 광장을 가득 메운 인민들이 전통민속놀이 등을 즐기고 있는 내용인데,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이 우리 연합뉴스에 제공한 사진 중에 합성에 사용된 컷이 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 2005년 EPA에 제공한 작업현장 사진도 배경 현수막 글씨의 초점이 정확하게 맞는데, 합성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류의 합성사진은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관영매체에 거의 일상적으로 실리고 있어 새삼스러울 게 없다. 문제는 북한 언론매체들이 이러한 조작과 변형을 잘못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진 보도를 사실 전달이나 현장 기록의 의미가 아니라 체제에 필요한 메시지 전달로 여기는 탓이다. 종종 변형되지 않은 컷과 변형된 컷을 함께 공개하는 데서도 그들의 사진조작 철학(?)을 읽을 수 있다.
■ 수해사진 조작은 홍수 피해를 과장해 외부의 식량지원 등을 더 얻어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달리 볼 여지도 있다. 사진을 찍은 15일 대동강 유역에는 300㎜의 장맛비가 단기간에 내렸다. 다락 밭 개간으로 100㎜가 안 되는 비에도 넘치는 대동강이다. 당연히 큰 홍수가 났을 터. 심한 수해 상황을 알릴 목적이었으면 훨씬 더 리얼한 장면이 있었을 텐데, 조작된 사진의 분위기는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그림이 되도록 손질을 가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사진 조작으로 어쨌든 세계적 망신을 사긴 했지만, 무조건 불순한 의도로 단정 짓는 것은 오히려 너무 단선적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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