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다 지쳐 이젠 허탈하고 창피할 뿐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전례가 없는 규정이다. 출연자 섭외할 때마다 사상검증을 하란 말인지 기가 막힌다."
19일 MBC PD들은 MBC의 이른바 '소셜테이너 출연 금지' 규정에 대한 항의와 사회 각계 인사들의 MBC 출연거부 선언이 잇따르자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 라디오 PD는 "출연거부 의사를 밝힌 조국 교수나 제정임 교수를 비롯해 시사 프로그램 인기 출연자들이 다 빠지게 돼 당장 섭외에 비상이 걸렸다"고 전했다.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이순곤 PD는 "출연거부 선언은 MBC 자체를 불신한다는 것인데 안타깝다. 꿩 대신 닭이라고 다른 출연자를 섭외하는 수밖에 현장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며 곤혹스러워했다.
MBC 노동조합은 이날 노보에서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방송법이 규정한 차별금지의 정신을 앞장서 사수해야 할 언론사가 만천하에 대놓고 이를 어기겠다고 선언해 버렸다"며 "MBC는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라고 자괴감을 드러냈다. 노조는 "이 사규가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인정한 헌법에 위배되는 반인권, 공안심의 강령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효를 선언한다"며 폐기될 때까지 불복종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MBC는 최근 사내 방송심의규정에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대립한 사안에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의 의견을 공개적 지지 또는 반대하는 발언, 행위를 한 사람'은 고정 출연을 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을 신설했다. 이 때문에 18일부터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2주에 한번 고정 패널로 참여할 예정이었던 배우 김여진씨의 출연이 무산됐다.
현재까지 MBC에서 이 규정을 적용해 출연을 제한한 경우는 김씨 1명뿐이다. 그러나 MBC 안팎에서는 이 규정대로라면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배우 이덕화('댄싱 위드 더 스타' 출연)나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해 발언을 계속해온 전원책 변호사('시선집중' 고정 패널) 반값 등록금 지지 의사를 표한 김제동('일밤-나는 가수다' 출연)의 출연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형평성 논란이 나온다.
공연기획자 탁현민씨는 당초 김여진씨의 첫 출연 예정일인 18일에 맞춰 서울 여의도 MBC 앞에서 삼보일배에 빗대 MBC에 항의의 뜻을 표시하는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펼쳤다. 탁씨는 19일 전화통화에서 "MBC 경영진을 조롱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장난스럽게 한 게 아니다 많이 고민한 네거티브 퍼포먼스였다"며 "매번 주먹을 날릴 수는 없는 거고 출연거부에 동참하겠다는 분들을 모아 발표하고 헌법소원과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등 법적인 조치를 통해 MBC를 압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18일 공개한 13명 외에 배우 문성근, 출판평론가 변정수, 화가 임옥상씨 등이 전화로 출연거부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MBC 노조는 심의 대상이 되는 출연자 중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을 모아 사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비롯한 법적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사규는 심의 대상이 될 언행에 대한 시점 제한이 전혀 없고, '사회적 쟁점'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 '명예와 위신' 등 추상적인 표현으로 채워져 있어 법적으로 논란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에 대해 이진숙 MBC 홍보국장은 "사규는 더 공정한 방송을 만들기 위한 폭넓은 가이드라인에 해당하며, 사안이 발생하면 각 본부장이나 국장들이 판단할 일이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MBC의 이런 조치가 일반 대중의 표현의 자유와 액세스권(언론매체 접근이용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신인수 변호사는 "공공재인 전파를 쓰고 있는 공영방송이 사회적 이슈에 의견을 표명한 사람들을 출연 못하게 한다면 표현의 자유 침해인 동시에 액세스권 침해라는 점에서 위헌이고 무효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사회적 이슈가 무엇인지 등 규정 자체가 모호해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덧붙였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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