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2차 구제금융 지원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독일이다. 독일은 민간부문의 참여를 이끌어 내 그리스의 국가채무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은 채무 조정이 국가 부도(디폴트)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독일은 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공멸을 야기할 지도 모르는 그리스 사태에 미온적 태도로 나오는 것일까.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8일 “유로존에 의존해 왔던 독일 경제가 새로운 투자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독일이 서유럽을 중시했던 전통적 전략에서 벗어나 자국의 성장 엔진을 동유럽과 아시아 등 신흥시장 쪽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유로존은 아직까지 독일의 최대 교역 상대이지만 갈수록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2008년 독일 수출의 43%를 차지했던 유로존은 지난해 비중이 41%로 감소했다. 가령 재정 위기에 직면한 이탈리아는 지금까지 독일에 많은 기계 부품을 공급해 왔지만 독일 기업들은 이제 동유럽 국가로 거래처를 옮기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 월등한 데다 품질 수준도 이탈리아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아시아의 대 독일 교역 비중은 같은 기간 12%에서 16%로 증가했다. 특히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가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독일의 대 중국 수출액은 540억유로로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경제의 유로존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독일은 역내 국가들에 더욱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이 그리스 구제금융 계획에 독자노선을 걷는 것도 민간부문이 동참하지 않을 경우 그만큼 독일이 분담해야 할 손실이 커지기 때문이다. 케빈 피터스톤 영국 런던정경대(LSE)교수는 “독일이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전체의 이익보다 자국의 이익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의 탈유로존 행보를 바라보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은 유럽 재정위기에 지나치게 소극적 리더십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이 과거 유럽 통합의 산파 역할을 맡았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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