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문턱에 서있다. 역사의 질곡 속에 부침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역할은 상당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지성을 대표하는 서울대는 현대사를 헤쳐 온 지식과 인재의 중심에 서있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서울대가 잘 되기를 바란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30년이 넘게 국립대 교수로 일한데다 8년간 총장으로서 대학 경영을 책임진 경험을 가진 나로서는 서울대에 대한 관심이 더욱 각별하다. 서울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이자 '민족의 대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법인화와 반값 등록금 문제를 둘러싸고 서울대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갈등 이면에는 대학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소통을 통해 지혜로운 결론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필자는 서울대가 지금 이러한 문제에 매몰되어 논란을 벌이는 현실이 안타깝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학으로서 서울대는 큰 틀에서 현재의 책무와 국가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교육과 연구를 통해 국가와 민족에 기여해야 하는'서울대 역할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서울대는 각 학문 영역마다 진로를 제시하고 앞장서서 그 길을 개척해야 마땅하다. 이로써 지식기반사회에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국가적 책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발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수들의 주체적 혁신과 헌신적 노력이다. 정녕 서울대 교수들이 교육과 연구에 바친 열정이 최고의 수준이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부 교수들의 경우 최고 대학의 교수라는 생각으로 안주해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서울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아탑으로서 인문학, 기초과학, 응용과학, 공학 등 여러 학문 분야를 선도해야 한다. 과연 얼마만큼 두각을 보였고 얼마나 값진 성과를 냈는지도 반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지원이 훨씬 적은 지방 거점 국립대보다도 더 낮은 연구 성과를 보인 분야는 없었는지 냉철한 진단이 필요하다. 공과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웃 일본이 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무려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기초과학 분야에서 단 한명의 수상자도 내지 못했고 지금도 비전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서울대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데는 서울대의 역할이 미흡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가 기초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으려면 과연 서울대가 어떻게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길을 제시하고 그 로드맵에 따라 차근차근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서울대 교수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무를 소홀히 한다면 국민들이 깊게 실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교수와 함께 서울대의 모든 구성원들이 새롭게 각오를 다졌으면 한다. 서울대 학생들도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체로서 좀 더 멀리 보며 큰 비전을 가져야 한다. 넓은 마인드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열어가고, 나아가 국제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꿈을 향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울대가 잘되어야 다른 거점 국립대들이 잘되고 국가가 잘 살 수 있다. 그래야만 제2, 제3의 서울대도 나올 수 있다. 서울대가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하는 거대 담론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갈 때 국민들도 서울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사랑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의 분발을 촉구한다.
김인세 부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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