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6시께 서울 중구 명동성당 맞은편 을지로2가 161번지 일대. 갑자기 나타난 대형 굴삭기와 재개발 시행사측 철거용역 직원 40여명을 발견한 상가세입자들이 황급히 뛰쳐나갔다. 세입자들은 굴삭기 앞에 버티고 서 온 몸으로 철거반원의 진입을 저지했고, 대학생과 시민단체 회원 20여명이 스크럼을 짜고 막아 섰다. 양측의 실랑이와 몸싸움은 이날 오후 3시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철거반원에게 떠밀린 전모(29)씨가 실신, 병원에 실려갔다.
재개발 철거반원들과 상가세입자들 사이의 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재연된 곳은 명동 재개발 3구역이다. 지난해 4월 재개발 사업구역시행허가가 났고 같은 해 11월 도시관리허가도 떨어져 지하 6층 지상 25층의 업무용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감정평가기관이 3구역 4,131㎡에 있던 상가 30여 세대에 대해 책정한 보상금은 370만~1,700만원. 일부는 보상금을 받고 떠났지만 11세대는 '현실적인' 보상을 요구하며 지난달 14일부터 철거대상 상가 중 한 곳인 카페 '마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2009년 1월 보상을 요구하던 철거민 5명이 숨지기도 했던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531일간 농성을 벌였던 홍대 앞 국수집 '두리반'과 똑같은 갈등 구조다.
이처럼 재개발 현장의 충돌이 되풀이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보상을 둘러싼 현격한 입장차다. 국내 대부분의 상가 세입자들은 상권 자체에서 얻는 이익, 신용 등 무형적인 가치를 계산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권리금을 주고 받지만 재개발 보상금의 감정평가 기준에는 권리금이 빠져있다. 즉, 재개발 보상금은 상인들이 들인 돈을 돌려주기는커녕 큰 손실을 가져다 주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 곳에서 9년째 음식점을 운영해온 박모(61)씨는 "권리금과 인테리어비, 보증금으로 들어올 때 쓴 돈만 3억원"이라며 "보상해 준다는 게 고작 1,400만원이니 우리가 죽어야 이 난리가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상가 세입자는 현행법상 주거 세입자보다 보상에서 열악한 처지에 있다. 주거 세입자에게는 이전비와 개발 이후 임대아파트 입주 자격을 주고 개발하는 동안 임시 수용시설을 제공하도록 돼 있지만, 상가 세입자들에게는 휴업 보상비만 지급하면 된다.
그래서 상인들은 보상금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주대책을 요구한다. 배재훈 명동 3구역 상가세입자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금만으로는 새로 들어갈 수 있는 상가가 아무 데도 없다"며 "시행사는 우리가 기존에 운영하던 상가와 비슷한 규모의 상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개발 시행사인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 이민석 대표는 "보상금만 받고 이미 가게를 비우고 나간 세입자들과 형평에 맞지 않는다"며 "법원의 결정에 따라 합법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중구청은 "세입자들이 보상금 인상을 요구한다면 중재 여지가 있지만 계속 이주대책을 요구하고 있어 중재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결국 현행법 아래서는 상가 세입자와 시행사 간의 충돌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 개선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용산참사 이후에야 상가 세입자 문제가 정책적으로 논의됐지만 실현된 것은 없다"며 "영업 손실 외에도 권리금 등 상인들이 실제로 겪는 손실에 대한 합리적 보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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