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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21> 골든 하베스트 시절과 리샤오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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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21> 골든 하베스트 시절과 리샤오룽

입력
2011.07.1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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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다섯 손가락'이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둘 무렵, 란란쇼가 그 동안 제작 총지휘를 했던 레이몬드 초우를 밀어내고 모나팡을 그 자리에 대체했다. 모나팡은 란란쇼의 후실로써 영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가수 출신 40대 여성이었다.

그 무렵 나는 다음 작품을 준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의상과 대ㆍ소도구, 주인공이 사용할 칼 등을 준비시켰는데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담당 책임자들이 의상과 검을 가지고 내 사무실로 가져왔는데 준비된 의상의 길이가 굉장히 짧아져 있었다. 심지어 검도 짧아져 있었다. 원래 중국 옷이나 검이라는 것이 표준사이즈가 있는데 이를 무시할 만큼 짧아져 있었으니 깜짝 놀라서 "이거 어떻게 된 거냐?"물었다. "새로 온 제작 총책임자 모나팡이 지시를 해서 이렇게 만들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 모나팡이 얘길 해도 그렇지 중국의 전통의상이나 검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짧아 질 수 있느냐?"고 따져 물으니 "제일 상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모나팡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이 지시해서 이렇게 의상과 검을 짧게 만들라고 했느냐?" 했더니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유가 뭐냐?" 물으니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얼마나 절감이 되겠느냐? 좀 더 큰 범주에서 제작비가 절감되는 것이지, 이렇게 되면 나보고 코미디 감독을 하란 얘기냐? 고쳐라 당장에"라고 요구했다. 그래도 모나팡은 "그냥 써 달라"고 말했다. "그래?" 하고 의상 책임자하고 소도구 책임자들한테 "이거 들고 따라와!" 하며 득달같이 모나팡 방으로 갔다.

모나팡은 바닥에 앉아서 악보를 펼쳐놓고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의상과 소도구를 모나팡 앞에 집어 던지니 놀라 나자빠졌다. "당신 혼자 다 해먹어. 당신하고 나하고 어떻게 영화를 하냐. 영화를 모르는 당신하고는 내 정열을 쏟아서 목숨을 걸 순 없다. 그러니 당신 혼자 다 해먹어라. 난 다시는 이 회사에 안 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두 서너 시간 지나서 란란쇼한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 다시 준비해 줄 테니 돌아와서 일을 해다오." 그러나 난 이미 그 무지한 처사에 마음이 떠나버렸다. "영화를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뭘 어쩌란 말이냐. 하나를 보면 열을 알지. 지금 의상하고 소도구 가지고 이 정도면 앞으로 제작 하는 데 얼마나 큰 문제가 생기겠냐? 나는 그런 골치 아픈 일 안 한다. 그런 정열 있으면 내가 영화에 쏟아야지 왜 그 여자하고 싸워서 소모하느냐?" 그렇게 말하곤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란란쇼의 비서실장이 찾아오고, 모나팡이 전화해서 잘못했다고, 잘 몰라서 그랬다고 사과했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란란쇼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신한테 300만 달러를 투자해서 개인 프로덕션을 만들어주겠다. 쇼브라더스 안에서 하지 말고 당신 개인으로 당신 재량 껏 영화를 제작해라." 그래서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한다 그래도 그 돈은 너희 돈이니까 나중에 나한테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내가 너희들 손바닥에서 놀 순 없지. 그 여자가 없으면 간다. 300만 달러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레이몬드 초우가 찾아왔다. 새로 만드는 영화사에 참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너는 그 동안 샐러리맨이었는데 무슨 돈이 있어 제작을 하느냐?"하니 "동남아시아 모 투자자가 좋은 감독들이 있으면 투자하겠다고 했다. 너하고 '정무문'의 로 웨이 감독, 황풍 감독 이렇게 세 감독이 함께 회사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골든 하베스트라는 영화사가 출범하게 것이다.

쇼브라더스를 그만두고 골든 하베스트로 가보니 촬영소도 없고 규모도 작은 신생 영화사에 불과했으니 한국 제작 시스템이나 똑같았다. 그때부터 다시 고생길로 접어 든 것이다. 골든 하베스트가 자기 자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우리 감독들 이름을 가지고 동남아시아에서 제작비를 투자 받아 영화를 팔기 시작했는데, '흑야괴객'이라는 영화가 골든 하베스트에서 만들었던 내 첫 작품이었다. 제작비를 조금이라도 절감하기 위해 이번에는 정식으로 한국과 합작영화로 만들었다.

새옹지마가 되었던지 제작비 절감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기보다는 로케이션을 통한 실제 액션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화면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작품성도 평가 받았고 홍콩이나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좋은 흥행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그 즈음 골든 하베스트에서 레이몬드 초우와 나, 로웨이 등이 제작회의를 할 때였다. "이 방식대로 가면 큰 발전이 없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술 배우를 발굴해야 되지 않겠나?"하고 뺐?의견을 제시했다. 당시에 난 리샤오룽(李小龍)의 존재를 몰랐고 청룽(成龍)은 무명이었으니 그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술 배우가 별도로 준비되어야 할 것 같아서 제안한 것이었다. 기획책임자가 말했다. "리샤오룽이라는 아역 배우가 미국에 있는데 지금은 성장해서 미국의 TV시리즈 '그린 호넷'에서 주인공을 받들고 다니는 비서, 보디가드 역할을 하고 있다. 걔를 데리고 오면 좀 물건이 되지 않겠냐?" 나도 참 좋은 의견이라고 하며 "우리에게는 지금 전속 배우가 있어야 하니 그런 사람을 영입하면 되겠다"했고, 그래서 로웨이 감독이 리샤오룽을 주인공으로 하는 '당산대형'과 '정무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홍콩에는 촬영소가 없어서 스카우트한 리샤오룽을 방콕까지 데리고 가서 올 로케이션으로 '당산대형'을 찍었다. 이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골든 하베스트가 비로소 단단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다음에는 '취권'으로 일약 스타가 된 청룽을 스카우트해서 골든 하베스트의 전속배우를 만들었고 이후 청룽 영화 시리즈가 계속 흥행에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골든 하베스트가 건재할 수 있었다.

회사 재정이 좀 좋아지니 거의 폐기 되다시피 한 촬영소를 임대해서 골든 하베스트의 둥지로 삼았다. 촬영소 하나만 있지 현상실 등의 시설이 없었지만 난 그 촬영소 안에서 '파계'를 찍었고 청룽의 주연작들, '정무문' 등의 리샤오룽 영화들도 만들어졌다. 리샤오룽 출연작은 '당산대형'과 '정무문' '용쟁호투'부터 '사망유희'까지 연속적으로 히트를 쳤다.

그러나 리샤오룽은 연기자라기 보다는 무술 배우였기 때문에 여러 작품을 통해서 자기가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줬다는 것을 느끼자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고 마약을 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리샤오룽이 나를 찾아 왔다. "감독님하고 저하고 함께 영화를 만들면 뭔가 새롭지 않겠습니까? 정감독님은 '죽음의 다섯 손가락'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니 저도 그런 영화를 감독님과 해 보고 싶습니다"라는 얘기였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나 또한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했던 영화감독이었기에 새로운 것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에 기꺼이 동의했다.

"함께 해보자"하고 기획단계에 들어가서 차근차근 준비하는 중 갑자기 리샤오룽이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약과용 쇼크사'였다. 사망 당시 리샤오룽과 골든 하베스트 계약이 만료돼가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흉흉한 소문과 함께 음모론이 들리기 시작했다. 음모론의 내용은 이렇다. 골든 하베스트에서 리샤오룽을 잡기 위해서 딤페이라는 육체파 여배우와 연인이 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리샤오룽은 딤페이 집에서 생활 했는데 딤페이는 그에게 마약도 권하고 구해주었다. 딤페이는 골든 하베스트에서 전략적으로 리샤오룽에게 보낸 여자이기 때문에 골든 하베스트가 시키는 대로 뭐든지 했을 것이다. 딤페이는 리샤오룽이 하는 마약 분량까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리샤오룽이 마약을 과다 복용하게끔 유도하고 쇼크사를 이끌었다. 당시 정황상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1973년 7월 20일 리샤오룽의 사망으로 인해 골든 하베스트와 그와의 인연은 숱한 미스터리만 남긴 채 끝나고 만다. 리샤오룽 사망에 얽힌 사실관계가 어떻든, 치졸한 회사의 천민자본주의 행각이 얼마나 지리멸렬하고 탐욕스럽든 내게 있어 확실한 현실은 리샤오룽과 내가 꿈꾸던 '새로움'은 그렇게 어이없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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