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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히틀러와 감정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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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히틀러와 감정이탈

입력
2011.07.1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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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천명 사람보다 개의 목숨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모든 독자는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1996)에는 관객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비비카 A. 폭스)이 아들, 애완견과 탈출하는 장면이다. 모녀는 은신처로 대피했지만, 리트리버 혈통의 애완견은 아직 밖에 있다. 주인을 향해 맹렬히 달려 오는 개 뒤로 수많은 사람을 집어 삼키며 불 기둥이 몰려 온다. 불이 꼬리까지 따라와 죽음 직전에 몰리는가 싶었지만, 가까스로 개가 은신처로 뛰어든다. 동시에 주인공이 문을 걸어 애완견도 목숨을 건졌을 때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수 많은 사람이 희생된 건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관객이 애완견의 안위에 더 몰입했던 건 감정이입(感情移入) 때문일 것이다. 개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감성적으로 판단했던 셈이다.

15년 전 기억을 되살린 건 영화 소개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 핵심 이슈에 대해 갈수록 이런 판단이 내려지는 듯해서다. 실제로 정파적 견해에 영향 받아 상당수 시민이 감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대북 정책에서 자녀 급식에 이르는 많은 이슈 사이에 찬반의 상관관계가 높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지한다면, 감세와 4대강 개발에는 찬성하지만 무상 급식, 반값 등록금, 대기업 초과이익 공유제 등에는 부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일관성은 합리적이지 않다. 반값 등록금이 되면 임직원 자녀 등록금을 지원하는 대기업이 수혜를 보고, 할인마트의 '통큰 치킨'이 없어지면 '동네 닭집' 사장님보다 어려운 샐러리맨은 피해를 본다.

부자 감세를 반대하면서, 자영업자 지원을 외치는 것도 자가당착(自家撞着)일 수 있다. 자영업자의 납세 순응도가 현격히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근로자 가구는 월 경상소득(391만원)의 3.79%(14만8,000원)를 경상조세로 지출했으나, 자영업자가 포함된 비근로자 가구는 소득(296만원)의 1.75%(5만2,000원)만 세금으로 냈다.

달력을 과거로 되넘기면 더욱 혼란스럽다. 2001년 40%이던 소득세 최고 세율이 10년간 35%까지 떨어졌는데 김대중(2001년ㆍ40%→36%)ㆍ노무현 대통령(2004년ㆍ36%→35%)때 단행됐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원칙에 따라 이 개편을 주도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은 야당의 중진 의원이 됐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 업종' 도입을 추진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중소기업 고유 업종 제도를 폐지했었다. 한국 경제의 취약점은 자영업자 비율(경제활동인구 20%)에 있다는 문제 의식에 따라 자영업 구조조정을 시도한 것도 노무현 정부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 에서 독일 국민의 눈을 가린 심리 선전술을 이렇게 적고 있다. '민중의 압도적 다수는 냉정한 숙고보다 감정적 느낌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 감정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폐쇄적이다. 긍정 아니면 부정이며, 사랑 아니면 미움이고, 정의 아니면 불의이며, 참 아니면 거짓이고,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는 결코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은 '우리 주장이 100% 맞다'며 단순한 해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히 옳고, 완전히 나쁜 것은 거의 없다. 사회 이슈를 판단할 때 감정이탈(感情離脫)이 필요한 이유다.

조철환 경제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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